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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무부는 13일(현지시간) 수출 국가·기업을 단계별로 나눠 AI칩 수출 한도를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신규 규제를 1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핵심은 ‘동맹국도 우려국가’도 아닌 100여개 국가들에게 미국산 기술이 포함된 AI칩 구매 한도를 설정한 것이다. 이는 중국이 동남아나 중동 등 제3국에 데이터 센터를 만들어 AI역량을 키우거나 제3국이 보유한 미국산 AI칩을 수입하는 등 ‘우회로’를 확보하지 못하게 하려는 포석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맹 및 파트너국 20여개국은 제재를 받지 않지만 중국, 러시아, 북한 등 20여개 적대국은 수입이 사실상 금지되며, 나머지 100여개 국가는 국가별로 반도체 구매량에 상한을 설정한다.
◇엔비디아 매출 56%가 非미국…“상당한 타격”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이번 규제가 “혁신이나 미국의 기술적 리더십을 저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엔비디아 투자자와 분석가들은 이번 규제가 엔비디아의 수익성에 커다란 타격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길 루리아 DA데이비슨 분석가는 로이터통신에 “현재 엔비디아 반도체의 절반 정도가 규제가 시행되면 한도가 제한받는 국가에서 판매되고 있다”고 말했다.
엔비디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매출의 56%를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얻고 있으며 이 중 중국이 약 17%를 차지한다. 다만 엔비디아가 지난해 초 미국 정부의 대(對)중국 규제를 피해 성능을 낮춘 AI칩 H20는 이번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엔비디아 대관 담당 부사장인 네드 핑클은 블로그에 게시한 성명에서 이번 조치가 미국의 AI 리더십을 훼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규제는 ‘반(反)중국’이라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미국의 안보를 강화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새로운 규칙은 이미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온 게임용 PC와 하드웨어에서 사용가능한 기술을 포함해 전 세계 기술을 통제한다”고 지적했다.
존 노이퍼 반도체산업협회 회장은 “이 정도 규모와 영향력이 있는 규제가 대통령 교체 며칠 전 발표되고 업계와 의미 있는 의견 교환 없이 시행된다는 것이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노이퍼 회장은 “새로운 규제는 전략적 시장을 경쟁자들에게 양보해 미국 경제와 반도체 및 AI 분야 경쟁력에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AI칩 수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고객들이 성능이 낮지만 저렴하면서 공급이 안정적인 중국산 AI칩으로 눈을 돌릴 것이란 얘기다.
반면 지미 굿리치 랜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 규칙이 중국 AI 기업에 경쟁 우위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대규모 AI 데이터 센터를 외국의 적대세력과 의심스러운 관계가 있는 국가로 무분별하게 이전하는 것은 명백한 국가 및 경제안보를 초래한다”며 “이 프레임워크는 여전히 수백만개의 칩이 전세계로 유통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이번 규제로 중국이 AI칩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것이란 우려는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미국 관리는 FT에 “중국의 AI 모델보다 미국 AI 모델은 약 6개월에서 18개월 앞선 수준”이라며 “매 순간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아마존·MS·구글 ‘반사이익’ 기대
로이터통신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운영하는 미국 빅테크들은 이번 규제로 오히려 시장 점유율이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AWS, 애저, 구글 클라우드 등을 클라우드 서비스를 전세계에 제공하는 이들 기업들은 AI칩을 사용할 때 필요한 허가 절차를 생략할 수 있는 승인을 받았다. 이를 통해 미국이 AI칩 수출을 제한한 국가에서도 데이터센터를 설립할 수 있게 된다.
안젤로 지노 CFRA 분석가는 “차세대 대규모언어모델(LLM)과 방대한 설치기반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재정적 여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 기업은 AI의 ‘게이퍼키퍼’”라며 “가장 최첨단 칩에 접근할 수 있는 회사들이 가장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규제 실행의 키(key)를 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차기 정부가 어떻게 나설지도 주목된다. 이번 규제는 공포일부터 120일 후에 발효되기 때문에, 규제 시행 시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약 3개월이 지나고 나서다.
로이터 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전체적인 규제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개별 국가와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협상에 따라 규제를 면제받고 부과받는 명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텍사스 출신 상원 상무위원회의 테드 크루즈는 이 규제가 “의회나 미국 기업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고 비밀리에 초안을 작성했다”면서 연방기관의 조치를 뒤집을 수 있는 의회 검토법을 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