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없는 재택지옥…육아·살림·업무까지 3중고

정병묵 기자I 2020.03.11 11:00:00

''코로나19'' 방지 대기업 중심 재택근무 속속 돌입
가족과 모여 살거나 육아까지하는 이들은 ''이중고''
"근무시간, 아이까지 돌보기 힘들어…정상화 돼야"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가족 간 거리두기’가 안 되네요.”

대기업 계열 홈쇼핑회사에 다니는 김모(32)씨의 네 식구는 평일 점심에도 집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먹은 지 2주째다. 김씨의 회사는 지난주부터 재택근무에 들어갔고 초등학교 교사인 김씨의 부모님은 개학이 연기됐다. 취업준비생인 동생도 다니던 학원이 문을 닫아 집에서 공부한다. 처음에는 아침에 회사로 나가지 않아도 돼 좋았지만 어머니가 식사를 준비하면 거들지 않을 수 없다. 낮시간에 설거지를 하고 있노라니 ‘근무 시간에 뭐 하는 건가’ 싶고, 동생더러 좀 하라고 했더니 짜증을 부려 말다툼까지 했다.

지난달 26일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한 KT 직원이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화상회의 시스템을 활용해 업무를 보고 있다.(사진=KT)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회사들이 늘어나면서 막상 재택근무에 들어간 일부 직장인들에게 고민 아닌 고민이 생겼다. 평소라면 근무 시간에 볼 일이 없는 가족들과 집에서 계속 부딪치다 보니 관계가 불편해지고 업무 능률이 떨어진다는 것.

김씨는 “설거지하기 싫어 밖에 나가 사먹자고 하면 ‘위험하게 왜 밖에서 먹느냐’는 어머니 타박만 돌아온다”면서 “재택근무를 할 여건이 안 돼 위험현장에 노출된 분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일 수 있겠지만 가족끼리 평일 일과 중에 계속 봐 봤자 좋을 게 없다는 사실만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워킹맘’들은 업무와 살림에 육아까지 동시에 하느라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다. 최근 온라인 맘카페 커뮤니티에서는 “어린이집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회사가 재택근무를 시행한다고 했을 때는 좋았지만 아닌 것 같다”, “집에서 업무와 육아를 동시에 하다 보니 할 짓이 못된다”는 의견이 종종 올라오고 있다. 업무 회상회의 도중 아이가 불쑥 카메라에 얼굴을 비춰 사람들을 놀래키는가 하면 “거기 애 우는 집 볼륨좀 줄이라”는 고성이 오가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법률사무소에 다니는 워킹맘 정모(42)씨는 둘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이 3월 말까지 연기돼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정씨는 “재택근무를 하다 보면 아들이 놀자고 매달리고 덤벼 능률이 전혀 오르지 않는다”면서 “낮시간 동안 학교라도 보내놓았으면 모르겠는데 3월 말에 개학을 하기는 하는 건가”라고 언성을 높였다.

3살 아이의 아빠 임모(39)씨는 2주째 재택근무 중인데 아내 직장은 재택근무 시행을 안 해 낮시간에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있다. 임씨는 “아내도 재택근무를 하면 나눠서 아이를 볼 수 있는데 사실상 ‘독박 육아’ 중”이라며 “아이를 보다가 퇴근한 아내와 괜히 신경이 예민해져 다퉜다”고 호소했다.

실제 코로나19의 진원지 중국에서는 최근 이혼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가격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부부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매체 ‘화상보’에 따르면 지난 2일부터 정상 근무에 들어간 산시성 시안의 혼인등기소에서는 이혼 등기가 평소 대비 폭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혼자 사는 직원들은 재택근무 만족도가 아주 높은데 가족과 살거나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빨리 집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며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진정돼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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