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오바마 대통령, 쿠바 방문…역사적 발걸음 내디뎠다

김인경 기자I 2016.03.21 15:11:30

美 대통령으로 88년만…2박3일 외교 나서
정상회담부터 ''핑퐁외교'' 연상시키는 ''야구외교''까지

사진=AFP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쿠바 수도 아바나에 위치한 호세마르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지난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 당시 국가 주석을 만난 일과 견줄 만큼 중대한 순간이라고 평가한다.

◇88년 만의 인사…“쿠바, 잘 지냈어요?”

미국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한 것은 1928년 이후 무려 88년 만의 일이다. 1928년 1월 캘빈 쿨리지 당시 미국 대통령은 아비나에서 열린 미주회의 참석 차 쿠바에 방문했다. 미국 백악관에서 쿠바까지 비행기로 단 3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지만 냉전이라는 장벽에 양 국가는 한 세기 가깝게 두 국가는 대립을 거듭했다.

양국의 대립은 1959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쿠바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혁명에 성공한 피델 카스트로는 독재자 폴헨시오 바티스타 정권 주요 정치인들을 사형대에 올렸다. 냉전시기였던 만큼, 미국은 강경 비판을 하며 양국은 관계가 악화됐다. 이듬해 미국은 쿠바에 대해 금수조치를 선언했고 1961년 1월 단교에 이르렀다.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의 취임 후 관계 정상화 기류가 싹트기도 했지만 1981년 공화당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며 미국은 쿠바에 전방위 제재를 가했다. 결국 쿠바는 소련 등 공산권의 붕괴와 미국의 제재 속에 지구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가 됐다.

그러나 냉전의 상처가 차츰 아물며 양국은 2014년 12월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지난해 8월 아바나 주재 미국 대사관을 다시 개설했다. 지난달에는 정기 항공노선도 다시 마련했다.

전용기에서 내리기 직전 트위터에 쿠바식 스페인어로 “쿠바, 잘 지냈어요?(Que bola Cuba?)”라고 인사를 남긴 오바마 대통령은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무장관의 영접 속에 쿠바에 발을 내디뎠다.

이번 방문에는 상원 의원 8명과 하원의원 31명, 제록스와 페이팔 등 내로라하는 기업 경영자 10여명도 함께 했다. 88년 만의 방문을 자축하듯 정치와 경제를 아우르는 대대적인 외교 행렬이었다.

◇회담부터 야구까지…전방위적 친화 노력

역사적인 만남인 만큼 오바마 대통령의 발길도 분주하다. 21일에는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정상회담을 열고 이후 카스트로 의장이 주최하는 국빈 만찬에 참석한다.

다만 이 회담에서 양 측이 서로 예민한 부분을 건드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쿠바는 양국의 국교가 정상화된 만큼, 금수조치를 해제해 본격적인 경제 교류를 재개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의회 다수를 점하고 있는 미국 공화당은 쿠바가 여전히 반미 공산 독재국가라며 금수조치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카스트로 의장에 쿠바의 정치범 문제 등 인권 관련 문제 해결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날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 반체제 인사들을 만나는 것도 쿠바로서는 불편한 부분이다. 일부 쿠바 고위 인사들은 “미국은 내정문제에 간섭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불편함을 덜어내기 위해 22일엔 ‘야구 외교’에 나선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팀인 탬파베이 레이스와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 간 시범경기를 관람한다. 쿠바는 미국과 함께 야구 강국으로 손꼽히는 국가다. 미국과 중국의 해빙을 이끈 ‘핑퐁외교’처럼, 이번엔 야구를 통해 유대감을 다지고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반목과 갈등을 거듭한 두 국가인 만큼 하루아침에 친구가 될 순 없다. 그러나 이 만남이 냉전으로 얼룩져 있던 아메리카 대륙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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