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 기본권 아냐"…빅테크 압박한 유로폴

이소현 기자I 2025.01.20 15:36:42

캐서린 드 볼레 유로폴 국장 FT 인터뷰
"암호화 메시지 해독하는 데 협조 필요"
다포스포럼서 빅테크 ''사회적 책임'' 강조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빅테크(거대 기술 기업)들이 암호화된 메시지를 해독하는 데 책임이 있다며, 법 집행 기관과 협력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위협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20일(현지시간) 캐서린 드 볼레 유로폴 국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익명성은 기본적인 권리가 아니다”라며 기업들은 범죄자들이 익명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암호화된 메시지에 대한 경찰의 접근 권한을 제공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이같이 주장했다.

캐서린 드 볼레 유로폴 국장 (사진=AFP)
드 볼레 국장은 “경찰이 수색영장을 갖고 범죄자가 있는 집 앞에 갔는데 문이 잠겨 있어 진입하지 못한다면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환경에서도 경찰이 암호화된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어야 범죄와 싸울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유럽연합(EU) 법 집행기관 수장인 드 볼레 국장은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 참석해 빅테크 기업들과 만나 범죄자들이 익명성을 유지하는 데 사용하는 암호화된 메시지에 대한 경찰 접근 권한을 제공해야 한다고 압박을 강화할 계획이다.

메시지 플랫폼의 암호화는 경찰이 범죄 수사 과정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어 이와 관련해 법 집행 기관과 기술 기업 간의 갈등이 지속하고 있다.

작년 4월 유럽 경찰청장들은 암호화 기술이 범죄 수사를 방해하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들이 신속하게 조처를 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애플과 메타의 왓츠앱, 시그널과 같은 사생활 보호 중심의 메시징 앱들은 사용자의 보안을 이유로 암호화 해제를 위한 법적 요구를 지속적으로 거부해왔다.

애플은 온라인 아동학대와 기타 범죄 대응을 위해 법 집행 기관과 협력하려 했으나 프라이버시 단체들의 강한 반발로 인해 이러한 정책을 상당 부분 철회한 바 있다.

독일을 비롯한 일부 EU 회원국에서도 사법당국이 개인 메시지에 대한 접근 권한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여 아동성학대 방지 법안이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라고 FT는 설명했다.

유로폴은 작년 미국과 협력해 랜섬웨어 조직 록빗(LockBit)을 와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암호화된 메시징 서비스 인크로챗(EncroChat)과 스카이 ECC를 해독해 마약 밀매 및 조직범죄 단속에 큰 성과를 거뒀다. 벨기에에서는 스카이 ECC 해독을 기반으로 한 최대 규모의 재판에서 100명 이상이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앞으로도 추가적인 수사 및 기소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드 볼레 국장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범죄 역시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며, 빅테크 기업들이 법 집행 기관과 협력하지 않는다면 향후 유럽 내 범죄 수사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드 볼레 국장은 유로폴 수사에서 인공지능(AI) 활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최근엔 러시아가 발트해 해저 케이블을 절단했다는 의혹과 같은 ‘하이브리드 위협’을 다루는 것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유로폴은 범죄 조직에 대한 수사만 수행할 수 있다. 국가 차원의 범죄 행위가 개입되면 수사에서 철수해야 한다. 이를 변경하려면 새로운 EU 법안이 필요하다.

드 볼레 국장은 유로폴이 테러, 마약 밀매, 사기와 같은 중대 범죄를 다루는 기관으로 성장했으며, 2018년 취임 이후 직원 수가 2배 증가해 약 1700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앞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작년 유로폴의 인력을 추가 확충하고 “실질적인 작전 경찰 기관”으로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유로폴엔 EU 회원국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 등 여러 국가의 기관이 상주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수사국(FBI) 등 여러 기관에서 약 30명의 요원을 유로폴에 파견하고 있다.

드 볼레 국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백악관에 다시 복귀하더라도 유로폴과 미국의 협력 구조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