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7년부터 국내외 블록체인·가상자산 기업과 프로젝트를 자문해 온 박 대표는 “많은 규제 관련 컨설팅을 해왔지만 매번 예상이 빗나갔고, 그 결과 규제를 해석하고 예측해 주는 법률가의 역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형태로 발족한 SCI에는 법조계와 학계, 산업계 등 각 분야 국내 전문가는 물론이고 해외 전문가들까지 포함해 18명이 연구위원과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SCI는 오는 28일 창립 세미나를 열고 공식 활동에 들어간다.
“이용자보호법 뒤 업권법 입법한다더니…계속 지연돼”
박 대표가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디지털자산분야 입법과 규제에 있어서의 단발성과 지연이었다. 비트코인 가격 급등으로 온 나라의 관심이 쏠린 뒤 특정금융정보법을 통해 가상자산을 자금세탁방지 규제 틀 안으로 들인 것은 디지털자산에서의 첫번째 큰 변화였지만, 업계가 요구한 종합적인 규율 체계는 복잡하다는 이유로 미뤄졌고, 일단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부터 만들자는 타협이 이뤄졌다.
그는 “이용자 보호부터 하고 난 뒤 종합적인 법체계를 만들겠다고 해서 모두 빨리 하자는데 동의했지만, 약속했던 업권법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선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 공약이 나오며 관심이 다시 커졌지만, 정부 출범 후 법안이 제출됐는데도 입법은 계속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토큰증권(STO)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 전자증권법 개정으로 분산원장 기반 토큰증권이 제도권에 들어왔지만 허용 범위와 시기, 기술적 구조 등 핵심은 하위 규정에 위임됐다. 박 대표는 “내년 2월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어떤 범위에서, 어떤 플랫폼과 기술 구조로 사업할 수 있는지가 관건인데 시행령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며 “미국이 샌드박스 방식으로 상장주식 토큰화를 폭넓게 허용하는 흐름과 비교하면 차이가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법률가로서의 한계도 털어놨다. 그는 “시장은 늘 앞으로 규제가 어떻게 될지를 묻고, 그 때마다 합리적으로 예측해 답했지만 수많은 예측이 빗나갔다”며 “2017년부터 거의 10년 동안 소모적이고 생산적이지 못한 논쟁이 반복됐다”고 토로했다.
외부의 시선과 국내 현실 사이의 괴리도 SCI 설립을 결심한 이유다. 박 대표는 “외국 기업들은 처음엔 한국 시장이 역동적이고 정부·국회에서도 긍정적인 얘기를 많이 들으니 제도가 합리적으로 진전될 것으로 기대했다”며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같은 논의가 반복되고, 무엇보다 그 이유가 투명하게 설명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기업 중에는 앞으로 JP모건이나 골드만삭스 같은 금융회사로 성장할 곳도 나올 것”이라며 “그런 기업들에 한국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면 우리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위원회·정책제도개선협의회 ‘투트랙’…“실행형 싱크탱크”
SCI는 디지털자산·블록체인 산업과 이를 둘러싼 법률·규제·제도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정책을 제안하는 조직이다. 박 대표는 “정책 제안에 그치지 않고 법령과 규제, 제도 개선안이 실제 정책에 반영되거나 법령 제·개정으로 이어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
그는 원화 표시 스테이블코인을 예로 들었다. 박 대표는 “지금은 발행 문제에만 관심이 쏠려 있지만 실제 어떻게 활용할지, 원화 국제화와는 어떤 관계인지, 제도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육성할지까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장주식 토큰화와 한국 자본시장 육성도 주요 과제 후보로 꼽았다. 그는 “개별 기업의 민원이나 규제 완화 요청이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에 의미 있는 주제를 현장의 목소리로 발굴하겠다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해외 전문가를 연구위원으로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대표는 “그동안 글로벌화라고 하면 해외로 나가는 아웃바운드에만 집중했지만, 진정한 글로벌화는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가 어우러져야 한다”며 “싱가포르·홍콩은 제도 정비가 빠르지만 시장 자체가 한국과 다른데, 이런 차이를 객관적으로 비교하려면 해외 전문가와 기업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SCI는 해외 기업의 회원사·후원사 참여도 추진하고 있다.
“韓 디지털자산 아직 늦지 않았다…다만 시계는 계속 돈다”
유럽연합(EU)은 미카(MiCA)법 전환기간을 거쳐 본격 시행 단계에 들어섰고, 미국도 클래리티법(CLARITY Act) 입법은 지연되고 있지만 지니어스법(GENIUS Act)이 시행 단계로 가고 있다. 스위스·싱가포르·홍콩·일본도 관련 법령을 빠르게 정비하는 사이 한국은 이제야 국회에서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논의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한국 디지털자산산업은 이미 늦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박 대표는 “어느 나라도 아직 완비된 제도를 갖추고 있진 않다”면서 “우리에게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너무 늦었다고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만 그는 “방향을 명확히 정한 나라들은 보완 조치를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마련할 것이고, 한국이 지금처럼 하면 같은 논쟁을 반복하며 상대적으로 더 뒤처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만의 강점을 세 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두터운 개인투자자 기반이다. 박 대표는 “가상자산 투자자가 1000만명을 넘었고, 가격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상당한 거래량이 존재한다”고 했다. 둘째는 정보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역량과 빅테크·전자상거래·결제시스템 등 강력한 디지털 플랫폼이다. 그는 “이런 기반 위에서 분산원장과 블록체인으로 전환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나라와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셋째는 제조업을 비롯한 여러 산업에서 쌓아 온 경쟁력이다.
박 대표는 글로벌 기업들에 직접 묻는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제도 정비가 복잡하고 2~3년이 지나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데 그래도 들어오고 싶으냐고 물으면 그들은 그래도 여전히 들어오고 싶다고 한다”고 했다. 이어 “그들 눈에 한국은 규제 문제만 빼면 굉장히 매력적인 시장”이라며 “이 기회를 놓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회가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시간이 다 지났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시계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며 “그래서 더욱 싱크탱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개별 이슈 대신 큰 그림서 논쟁해야…AI시대 토큰화 대세”
최근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의 최대 관심사는 가상자산 과세 문제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전에 과세부터 시행되면 개인투자자들이 해외 거래소나 무기한 선물시장으로 빠져나가 한국의 강점인 국내 가상자산 현물 거래 기반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박 대표도 우려에 공감하면서도 “과세를 하느냐 마느냐도 결국 부분적 이슈에 대한 논쟁”이라며 “과세 형평성이 있고, 이익이 났으면 왜 세금을 안 내느냐는 논리가 나오기 때문에 이렇게 논쟁을 시작하면 유예 쪽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새 산업을 육성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준비가 아직 충분하지 않은데, 과세권이 있으니 세금부터 매기겠다는 접근이 적절한지 큰 그림 속에서 물어야 한다”고 했다.
|
SCI가 약 1년간의 준비 끝에 내놓을 어젠더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실물산업의 미래 경쟁력이다. 박 대표는 “한국 제조업이 지금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토큰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낡은 제조업으로 남을 수 있다”며 “대기업들이 가진 거대한 공급망과 산업 생태계에서 토큰화와 새 지급결제 수단을 시도해 볼 만하다”고 했다. 둘째, 토큰화된 자본·금융시장의 허브다. 그는 “영국에서 국제금융을 공부하며 느낀 것은 금융허브가 건물을 짓고 비용을 낮춰준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그간의 ‘동북아 금융허브’ 구호가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를 짚었다. 그러면서 “미국은 토큰화를 1930년대 증권 법체계 정립 이후 가장 큰 변화로 보고 있다”며 “기존 금융시장에선 허브가 되기 어려웠지만 토큰화 시장에선 새로운 허브를 지향할 수 있고, 과거 구호보다 훨씬 현실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셋째, 크립토 생태계 전체의 수용이다. 박 대표는 “실물산업을 토큰화하고 자본시장 허브가 되겠다면서 정작 크립토 생태계는 배제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토큰화 자산 거래와 스테이블코인 활용도 결국 블록체인 메인넷과 그 위의 토큰 생태계를 기반으로 이뤄지는데, 한국은 이를 계속 밀어내거나 최소화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이 토큰증권의 기술적 구조를 제한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전체 흐름과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시장은 역동적인데 정부는 정반대”…포지티브 규제 지적
연구 결과를 어떻게 정책에 반영할지에 대해 박 대표는 “아직 정해진 방법은 없고, 그 자체가 큰 도전”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한국은 정부 주도로 경제성장에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그 경험이 포지티브 규제 방식으로 강하게 남아 있다”며 “많은 연구기관이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면 그에 맞춰 연구하는 톱다운 구조인데, 이래서는 정부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까지 볼 수 없다”고 했다. 이런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독립적인 민간 싱크탱크가 한국에 많지 않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한국 시장과 정부의 간극을 핵심 문제로 꼽았다. 박 대표는 “한국 사람들은 고스톱이나 골프를 칠 때도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낼 만큼 시장이 역동적이고 창의적인데, 정부는 정반대로 그 역동성과 다양성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유럽은 오랜 싱크탱크와 제도 설계 경험 위에서 미카법을 만들었고, 일본은 자민당 전문가들이 매년 백서를 내고 정부가 이를 정책에 반영한다”며 “한국은 시장이 먼저 움직이는데 정부가 이를 관리·통제할 대상으로만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국가 전략을 제시하고 여러 규제기관이 이를 바탕으로 종합 보고서와 정책을 내놓으며, 그 문서가 전 세계 산업의 방향을 제시한다”며 “한국 젊은 창업가들이 당장 할 수 있는 얘기는 과세를 늦춰 달라는 정도이고, 큰 그림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문서 하나 제대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별 부처를 찾아가 특정 규제를 풀어 달라고 부탁하는 방식으로는 큰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며 “포괄적인 연구 결과를 시장과 공유하고, 시장의 에너지를 믿고 싶다”고 말했다.
법치주의 문제도 정면으로 제기했다. 박 대표는 “법치주의의 핵심은 국민과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며 “규제받는 쪽만 법을 지키고 정부는 법에 근거하지 않은 규제를 해도 된다면 그건 법치주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소 계좌 개설 제한을 들었다. 그는 “이를 금지하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실제로는 계속 막고 있다”며 “규제개혁위원회 같은 조직이 이런 본질은 건드리지 않고 기존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니, 정부가 바뀌고 대통령이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해도 잘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韓 글로벌 크립토 플랫폼 국가로…충격요법 필요하다”
박 대표가 그리는 최종 그림은 ‘글로벌 크립토 플랫폼 국가’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세계의 크립토 수도로 만들겠다는, 간단하고 명확한 국가 어젠다를 제시했고 그 아래에서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등이 각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한국도 그런 방향을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글로벌 기업에 시장을 내주자는 얘기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박 대표는 “우리가 적절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면 경제적 효과의 상당 부분을 국내에 남길 수 있다”며 “일정 규모 이상의 자본 투자나 일정 수준의 고용을 요구하면 국내 투자와 일자리, 세수가 생기고 한국 젊은이들이 글로벌 기업에서 일할 기회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다양한 외국 영화를 접하며 관객 눈높이가 높아지고 한국 영화가 발전했듯, 국내 시장에서 수준 높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 우리 기업도 큰다”며 “정부 지원금 조금 주고 해외에 나가 보라는 건 지나치게 단편적인 글로벌화”라고 덧붙였다.
스테이블코인 논의도 한 단계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세계를 지배하는데 왜 한국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없느냐고 묻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며 “세계적인 공급망을 가진 우리 대기업 생태계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새 지급결제 방식을 어떻게 활용할지, 그러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대기업들은 정부가 허용하지 않고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선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며 “SCI는 개별 기업의 고충 전달을 넘어 제도를 이렇게 바꾸면 산업과 경제에 어떤 효과가 나는지를 설명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위기의식을 거듭 강조했다. 박 대표는 “제조업에서 잘해 왔으니 앞으로도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들 하지만 과거의 성과가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며 “해외 기업과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목소리를 통해 더 늦으면 기회를 완전히 놓칠 수 있다는 긴장감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일종의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세훈이 두려운 민주당 텐버거 간다…불기둥 종목 정체는[특징주]](https://image.edaily.co.kr/images/vision/files/NP/S/2026/10/PS26102301348t.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