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만 역법이 완성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음력 1월을 정월로 정한 것은 2000년 전 정도로 추정한다. 조선시대에도 설이 큰 명절이었음을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전근대사회의 종말과 함께 설을 지내는 것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1896년 을미개혁으로 태양력이 시행되면서 음력이 폐지되었는데, 양력이 익숙하지 않았던 탓에 음력 설을 새해 첫날로 지내는 관습만은 민간에서 그대로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는 설 관습에 대한 또다른 중대한 도전이 됐다. 일제가 음력을 구시대 관습이라며 완전히 폐지해 양력설을 쉬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일제가 아니었더라면 시대 변화에 따라 양력 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대중들은 침략국에 대한 증오 때문에라도 음력 1월 1일 설을 그들이 패망한 뒤까지도 고집했다.
그래서 일제 패망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도 공식적인 새해 첫날은 양력 1월 1일이었지만 명절로서의 음력 설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통용됐다. 80년대까지도 정부가 양력설을 권장하는 정책을 폈음에도 음력 설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끊이지 않았고, 1985년 전두환 신군부 정권은 음력 설 당일을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공휴일로 지정했다.
다만 당시에는 설이 아닌 ‘민속의 날’이라는 근본 없는 명칭을 사용한데다 신정이 3일 연휴인데 반해 하루만 공휴일로 지정돼 제대로 된 명절일 수 있겠느냐는 불만이 나왔다.
결국 1989년 1월 24일 노태우 정부는 구정을 ‘설날’로 하고 연휴를 3일로 지정하기로 확정하면서 음력 설은 제 이름과 지위를 되찾았다. 이 소식에 당장 다음날 서울역에는 양력 2월6일 설날에 맞춰 기차표를 사려는 인파들이 몰려들었다.
음력 설이 가장 큰 명절로 자리를 잡게 되며 새해 첫날은 아쉽게도 하루만 쉬는 날이 됐다. 양력 1월 1일은 1990년부터 이틀만 쉬는 것으로 바뀌었고, 1999년부터는 아예 1월 1일 하루만 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