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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회사채 발행시장의 계절적 특성이 사라진 한해였다. 3분기와 총발행액이 2분기보다 많은 것은 지난 2014년 이후 10년 만이다. 한국은행이 본격적인 금리인하를 시작하자 비교적 낮은 금리로 차환하려는 기업들이 분주하게 자금조달에 나섰다. 또 한국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도 채권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국채 수요가 늘어 금리가 하락하면 우량 회사채에 대한 기관들의 낙수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올 들어 총 7조3750억원의 공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SK(034730)의 경우 총 1조6100억원 규모로 총 네 번의 공모채를 찍었다. 이어 SK하이닉스(000660)(7500억원), SK브로드밴드(5250억원), SK에코플랜트(5160억원) SK E&S(5000억원) 순으로 규모가 컸다.
오는 11일 SK텔레콤이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SK그룹의 회사채 시장 내 존재감은 더욱 굳건해질 전망이다. SK텔레콤은 지난 3일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통해 총 1500억원 모집에 1조2550억원의 주문을 받았다. 3·5·10년물로 최대 3000억원까지 증액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그룹은 SK그룹에 이어 두 번째로 회사채 시장의 대어로 이름을 올렸다. 총 4조474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한화생명(088350)이 자본성증권을 대규모로 발행한 영향이 컸다. 한화생명은 올해에만 총 1조1000억원의 신종자본증권을 조달했으며, 오는 12일 최대 8000억원 규모로 후순위채 발행을 앞두고 있다. 한화(000880)(7440억원)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7000억원)도 대규모로 회사채를 찍었다.
LG그룹도 활발하게 자금을 조달했다. 올 들어 총 4조17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공모시장을 찾은 기업 수는 6곳에 불과했지만, 대규모로 자금을 조달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1조6000억원)과 LG화학(051910)(1조원) 단 한 번의 공모채 모집에서 조 단위 자금을 수혈했다. LG유플러스(032640)는 두 차례에 걸쳐 총 1조1000억원을 조달했다.
이밖에 롯데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각각 회사채 시장에서 3조7470억원, 3조24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회사채 시장에서 차환을 위한 발행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회사채 발행량의 73%가 채무 상환을 위한 자금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들의 차환 목적 발행 추세를 감안할 때 2025년 주요 그룹사들의 자금조달 규모는 올해와 유사할 전망”이라며 “원화채권 잔존액 중 1년 내 만기도래액 비중이 높은 현대자동차그룹, 롯데그룹, 한화그룹, GS그룹 등의 발행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또 내년에는 회사채 순발행 수요가 올해보다는 적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국내 제조업 설비투자 규모가 올해(202조원)보다 4.3% 감소한 193조원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사채 발행이 없는 삼성전자를 제외할 경우 6.9% 줄어든 140조원으로 집계됐다.
정연홍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신규 투자 수요 제한되는 한편, 내년 하반기부터 경기회복 국면에 접어들며 기업들의 연간 잉여현금흐름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높아진 현금 여력은 기업들의 사채발행 수요를 낮추는 요인”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