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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우리는 ‘증권토큰’ 제도화를 고민해야 할까

김현아 기자I 2025.04.24 11:32:44

기술과 함께하는 금융 혁신, 지금이 방향을 정할 때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 박성준 센터장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 박성준 센터장] ‘토큰증권’이라는 말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주식이나 채권같은 증권을 블록체인 기술로 디지털화해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거래를 가능케 하자는 취지로, 여러 금융기관과 정부가 이를 위한 제도 마련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순서를 조금만 바꿔 ‘증권토큰(Security Token)’이라고 하면, 비슷해 보이지만 그 철학과 방향은 크게 달라집니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술과 제도를 바라보는 출발점이 전혀 다릅니다. ‘토큰증권’이 제도 중심이라면, ‘증권토큰’은 기술 중심에서 출발합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 센터장·㈜앤드어스 대표
해외에서 주로 논의되는 ‘증권토큰’은 기존 자산을 블록체인 위에 올려 거래 속도, 투명성,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는 접근입니다.

단순히 종이를 디지털화하는 수준을 넘어, 자산의 소유권 이전, 배당, 정산까지 자동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향합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컨트랙트(블록체인에서 실행되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 특정 조건이 충족될 경우 자동으로 배당이 지급되고, 거래와 동시에 자산과 대금이 실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 추진 중인 ‘토큰증권’ 제도는 기존 금융 시스템 내에서 기술을 수용하려는 신중한 접근입니다. 예를 들어, 토큰 형태로 주식이 거래되더라도 실제 소유권은 여전히 중앙기관인 예탁결제원을 통해 이뤄지며, 정산 기간도 기존의 T+2 체계를 따를 것 같습니다. 블록체인은 단지 거래 기록의 무결성을 보증하는 보조 기술로 활용됩니다.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면서도 기존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안정성과 제도 정합성을 중시하는 신중한 접근으로서의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본질적인 장점은 온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블록체인 기반의 증권 시스템이 실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디지털 증권소(SIX Digital Exchange)를 통해 실시간 정산이 가능한 증권 시스템을 운영 중이며, 미국은 증권토큰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해 제도권 안에서 공식적인 유통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와 독일, 일본 등도 블록체인을 법제화된 금융 인프라의 핵심 요소로 수용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철학 위에 그 제도를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기술을 기존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특성을 온전히 반영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따라서 ‘토큰증권’ 개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증권토큰’ 중심의 제도화를 적극 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술은 이미 자산의 흐름과 소유 구조와 방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기술을 단순히 관리하는 것을 넘어, 그 기술 위에서 작동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 생태계를 설계해야 합니다.

그것이 세계적인 추세에 맞추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진정한 디지털 금융의 시작이자,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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