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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EU 회원국인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로 20억달러어치의 수출품이 선적됐다. 하지만 이들 수출품 가운데 실제로 각국에 도착한 물품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10억달러어치 이상이 운송 도중에 사라진 것이다.
사라진 물품들은 군사용·정보용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어 EU와 주요7개국(G7)이 대러시아 수출을 금지한 민감 품목들로 확인됐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가 현재 러시아와 경제 연합을 맺고 있는 옛 소련 국가들인 만큼, 사라진 수출품이 러시아로 밀수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에스토니아의 에르키 코다르 제재 담당 장관은 “(사라진 물품들이) 어디로 갔겠는가. 이런 시기에 왜 그 나라들이 그러한 상품들을 필요로 하는가. 과연 누가 그 물품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가”라고 반문한 뒤 “분명 러시아다”라고 자답했다.
FT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시 경제를 지탱하는 ‘유령 무역’ 흐름”이라며 “중개인, 대리인 또는 공급업체를 이용해 세관 신고서에 가짜 목적지를 기재하는 등 수출하는 것처럼 위장해 러시아로 직접 물품들이 유입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발트 3국이 러시아나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허위로 선적 서류를 작성한 뒤 육로를 통해 러시아로 밀반입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러시아는 이같은 방식으로 서방의 제재에도 항공기 부품, 광학장비, 가스터빈 등을 지속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EU에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로의 수출 물량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증한 데다, 가스터빈, 납땜 인두, 라디오 방송 장비 등 특정 물품들은 대부분이 원래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아서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엘리나 리바코바 선임연구원은 “세계 무역 미러 통계가 일부 불일치하는 게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사소한 오류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