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쏟게 만든 '이방인'의 한 줄, '시지프스' 탄생 계기죠"

김현식 기자I 2024.12.31 18:00:00

창작 뮤지컬 '시지프스' 작·연출가 추정화 인터뷰
'이방인'과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 엮어 뮤지컬화
올해 'DIMF'서 창작뮤지컬상 포함 3관왕 수상 쾌거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2관에서 내년 3월까지 공연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딱 한 줄의 문장이 제 마음을 움직인 계기였어요.” 창작 뮤지컬 ‘시지프스’ 작·연출가인 추정화(51)가 2024년의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대학로에서 이데일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작품 집필을 결심한 순간을 돌아보며 꺼낸 말이다.

뮤지컬 ‘시지프스’ 작·연출가 추정화(사진=EMK뮤지컬컴퍼니)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 그의 마음에 불을 집힌 한 줄은 알베르 카뮈가 1942년 발표한 고전 명작 소설 ‘이방인’에 담겨 있었다. ‘이방인’은 양로원에서 지내던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던 청년 뫼르소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뒤 사형 선고를 받고 나서야 뒤늦게 삶에 대한 깨우침을 얻는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

추 연출은 “소설의 주인공 뫼르소가 내뱉는 말인 ‘누가 감히 마지막까지 뜨겁게 삶을 붙든 엄마의 죽음에 관해 울 권리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라는 문장에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꿈을 꾼다는 것과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서 그제야 ‘이방인’이 제대로 읽힌다고 느껴지더라”면서 “‘시지프스’는 그때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집필한 끝에 완성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의 한 장면(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카뮈의 ‘이방인’과 큰 돌을 가파른 언덕 위로 굴려야 하는 형벌을 받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시지프스를 절묘하게 엮어 뮤지컬화한 ‘시지프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추 연출은 “원래는 제목이 ‘노 웨이 아웃’이었는데 한동안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시지프스’로 변경한 것”이라며 “신기하게도 제목을 바꾼 뒤 공연제작사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는 뒷이야기를 밝혔다.

‘시지프스’의 배경은 가상의 폐허다. 희망이라곤 전혀 남아 있지 않은 무너져 버린 세상에 버려진 청년 배우 4명이 극중극으로 ‘이방인’을 공연하면서 삶을 버텨낼 힘을 얻게 되는 이야기를 활기찬 넘버들과 함께 펼쳐낸다.

추 연출은 “‘이방인’을 단 4명만 등장하는 소규모 뮤지컬에 걸맞은 어법으로 유기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등장인물들의 직업을 배우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극의 배경을 폐허로 택한 것은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절실함을 더하면서 내일이 없다고 해도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들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부연했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의 한 장면(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철학적 사유거리를 던지는 작품인 ‘이방인’을 한결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면서 희망찬 메시지가 명쾌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작업에도 공을 들였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MBTI(성격유형검사)를 소재로 한 넘버를 포함했다는 점도 돋보인다.

추 연출은 “출구가 없는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내려면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음 스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다”면서 “개막 후 ‘공연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관람평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시지프스’는 지난여름 열린 ‘제18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창작뮤지컬상, 여우조연상, 아성크리에이터상 등 3관왕에 오르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은 뮤지컬이다. 추 연출은 “연출 경력이 쌓일수록 모두가 합심해야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면서 “설득력 있으면서도 감각적인 무대를 구현해준 스태프들과 고된 일정을 성실하게 소화해준 배우들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밝혔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의 한 장면(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시지프스’는 지난 10일부터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2관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출연진에는 이형훈·송유택·조환지(언노운 역), 정다희·박선영·윤지우(포엣 역), 정민·임강성·김대곤(클라운 역), 이후림·김태오·이선우(아스트로 역) 등이 이름을 올렸다. 러닝타임은 인터미션 없이 100분. 공연은 내년 3월 2일까지 계속된다. 추 연출은 “작품의 주요한 소재인 ‘태양’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LED 100장을 조합해 무대 배경을 꾸미는 등 정식 초연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강조하며 관심을 독려했다. “‘시지프스’가 새해를 맞는 관객에게 기운을 북돋워주는 자양강장제 같은 뮤지컬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인 추 연출은 배우로 활동하다가 2013년부터 작·연출 활동을 병행했다. ‘이방인’을 읽었던 2018년 tvN 드라마 ‘멈추고 싶은 순간:어바웃타임’에 출연한 이후부터는 창작 활동에 집중하는 중이다. 앞서 ‘시지프스’뿐만 아니라 ‘블루레인’과 ‘프리다’로도 ‘DIMF’ 창작뮤지컬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작·연출 이력을 자랑한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의 한 장면(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올해는 동명 일본 애니메이션 기반 작품인 ‘4월은 너의 거짓말’ 초연과 도산 안창호의 삶을 다루는 ‘도산’과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를 그리는 ‘프리다’의 미국 공연까지 이끌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추 연출은 “미국 공연을 계기로 K콘텐츠를 향한 현지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내년 행보의 윤곽도 잡혔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 번역본 소설인 ‘설공찬전’을 모티브로 한 ‘설공찬’을 ‘DIMF’에서 선보일 계획이며 ‘도산’으로는 미국 동부 투어에 나선다. 더불어 또 다른 신작인 ‘조커’ 개발 작업도 꾸준히 병행할 예정. 추 연출은 “인류애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 연출을 선호한다”면서 “앞으로도 ‘시지프스’처럼 꿈을 꾸며 살아갈 계기를 만들어주는 인간적인 이야기를 녹인 작품들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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