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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령’ 상태였던 김씨가 발견된 것은 2023년 5월쯤이었다. 당시 거리 노숙인들의 안전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순찰하던 서울 영등포경찰서 영등포역파출소 경찰관들은 관내 한 고가도로 아래 비닐 천막에 살던 김씨를 만났다. 당시 김씨는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 횡설수설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경찰 신원 조회 결과 김씨는 2017년 실종선고(사망간주)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2007년부터 행방이 묘연했고 2012년 실종신고가 이뤄진 후에도 5년간 김씨를 찾지 못해 내려진 선고였다. 경찰은 관계기관과 협조해 김씨의 막냇동생 김병희(76·가명)씨와의 상봉을 도왔다. 동생 김씨는 당시 “인천, 성남, 종로처럼 사람이 모이는 곳은 전부 다 다녔다”며 30여 년간 큰 형을 찾아다닌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이 재회했지만 사망말소 취소소송은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소송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소송을 청구하려면 본인의 동의를 얻어 채취한 십지문(열 손가락 지문)이 필요한데, 김씨의 경우 망상 증세로 지문 채취를 거절해왔다. 경찰은 대화와 함께 소주병 등 물건에 지문을 찍는 방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동생 김씨는 “지문채취가 안 돼서 법원에서 소송을 보류해놨었다”며 “거의 30년 동안 찾았던 형 주민번호를 빨리 돌려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지문 채취는 결국 지난해 12월 3일이 돼서야 이뤄졌다. 소송을 시작하고 경찰이 설득에 나선지 9개월 여만이다. 경찰 등 관계 기관은 소송 재개와 동시에 복지 기관의 도움을 받아 다리 한쪽을 크게 다친 김씨를 요양 병원으로 안내했다. 그를 처음 발견한 영등포역파출소 민수(44) 경위는 “처음에는 어렵게 채취한 지문이 불일치한다고 해 아찔했는데, 금방 (지문이) 동일하다는 회신을 받아 팀원 모두가 박수치며 기뻐했다”고 당시 상황을 돌아봤다. 경찰청과 서울경찰청은 이 사례를 ‘지역경찰 주요 활동 사례’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영등포역파출소 경찰관들은 김씨 외에도 지난 한 해 동안 사망말소자 2명을 발견해 신원 회복을 도왔다. 1998년 실종선고된 이들은 남부지검의 소송 청구로 지난해 가을쯤 주민등록번호를 되찾았다. 민 경위는 “경찰뿐 아니라 다양한 기관이 협력해서 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