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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의 위탁을 받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시안 개발 연구’ 최종보고서를 2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20년 도입되는 검정 역사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를, ‘대한민국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표현을 써야 한다.
집필기준은 출판사들이 교과서 집필 시 유의해야 할 원칙·성취기준 등을 제시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만약 출판사가 이를 어기고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을 사용하면 교육부 검정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다. 교육부가 이번 시안을 집필기준으로 확정한다면 향후 검정 역사교과서 출판사들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
◇ 1948년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기술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은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교과서 추진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표현이다. 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에 이미 대한민국이 수립됐기 때문에 1948년은 ‘정부 수립’ 시기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다. 이를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하면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을 부정하는 사관이 된다는 것이다.
시안은 이런 입장을 받아들여 앞으로 개발될 역사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표현을 쓰도록 했다. 평가원 관계자는 “학계의 통설과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입장, 독립운동의 역사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은 ‘민주주의’로 바뀐다. 평가원 관계자는 “2011년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이를 ‘자유민주주의’로 서술한 이후 학계와 교육계에서 수정 요구가 많았다”며 “현행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정치와 법’ 과목에서도 ‘민주주의’로 기술하였으며, 사회과 다른 과목도 모두 ‘민주주의’ 용어를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MB 때 사용 ‘자유민주주의’서 ‘자유’ 빼기로
실제로 노무현 정부가 2007년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도입할 당시에는 ‘민주주의’란 용어가 쓰였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새 교육과정부터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대체했다. 앞서 2000년대 중반까지의 중·고교 국사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란 표현을 함께 써왔다.
평가원이 집필기준 시안에서 이를 ‘민주주의’로 통일해 쓰도록 하면서 향후 이념논쟁이 다시 불붙을 개연성이 커졌다.
진보 진영은 ‘민주주의’란 용어 자체에 ‘자유’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자유’를 빼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자유민주’란 표현이 1970년대 유신헌법에 처음 등장했으며 ‘반북·멸공’의 의미도 담고 있다고 강조한다.
반면 보수 진영은 19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언급하고 있다며 이에 반발한다. 특히 ‘자유’를 빼면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대변인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빠진 것은 역사교육에 대한 불필요한 이념 논쟁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헌법전문과 제4조에 ‘자유’가 명시가 돼 있어 헌법적 가치를 교과서를 싣는 것이 당연하며 사회민주주의·인민민주주의와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6·25 전쟁 관련해선 ‘남침’ 명기
또 다른 쟁점인 6·25 전쟁에 대해서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남침’을 명시하기로 했다. 앞서 올해 초 공개된 공청회 시안에는 ‘6·25 전쟁의 전개과정과 피해 상황’이란 표현이 들어갔다. 하지만 동족상잔의 책임 주체를 명시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자 최종 시안에는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의 전개과정과 피해 상황’이란 표현을 넣기로 했다.
평가원 관계자는 “그간 쟁점이 돼 온 민주주의 표기와 6·25 전행 남침 명기 문제 등은 한국사·역사교육·사회교육 관련 학회의 전문가 자문에 따라 조정했다”고 말했다.
이번 시안은 지난해 5월 31일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중학교 역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를 국정에서 검정으로 전환한 데 따른 새로운 집필기준이다. 평가원이 교육부 위탁을 받아 최종보고서를 마련했으며 교육부는 이를 토대로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상반기 중 확정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평가원이 제출한 정책연구 최종보고서는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제시된 하나의 의견”이라며 “교육부는 역사학계의 중론과 국민 여론을 고려해 행정예고 등을 거쳐 역사과 교육과정·집필기준 개정안을 확정 고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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