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행 형법 제126조는 수사기관이 직무수행 중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에 공표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피의사실공표죄’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실현하고 피의자의 명예와 방어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주요공직자 직무범죄나 부패범죄 수사 과정에서 외압 차단, 강력범죄의 추가 피해 방지 등을 이유로 ‘수사경과 브리핑’이라는 형태로 피의사실을 공개해 왔다. 양 학회는 “수사기관의 독립성과 수사능력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수사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최근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행위는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의견서는 유명인의 경우 언론의 과도한 보도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고 이선균 씨 사건을 예로 들면서 “유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언론의 조리돌림을 당하고, 수사과정에서 불필요한 사생활 관련 논란이 피의자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고 짚었다.
형사법 전문가들은 더 근본적인 문제로 피의사실공표로 인한 낙인효과를 꼽았다. 최종적으로 무죄로 판명된 경우에도 피의사실공표행위로 인한 낙인이 지워지지 않은 채 평생 죄인이라는 오욕 속에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훼손하는 중대한 인권침해라는 지적이다.
이에 양 학회는 △수사기관의 자정 노력 △피의사실공표 피해자 명예회복방안 마련 △피의사실공표행위의 법적 허용 한계 설정 △실효적 방지방안 수립 등을 위한 정교한 법적 대책을 마련할 것을 입법 및 행정 당국에 촉구했다.
아울러 형사법학계도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이번 의견서 제출을 계기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관행 개선과 피의자 인권보호를 위한 제도적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