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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진짜·언니"…日 Z세대 사로잡은 '한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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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훈 기자I 2026.11.02 13: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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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청년층 한국어 섞어 쓰는 '한본어' 유행
2018년 BTS·블랙핑크 계기…팬데믹 때 확산
"100년 전 식민지 시대와 정반대…놀라운 역전"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일본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 사이에서 한국어를 섞어 쓰는 ‘한본어’가 유행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이 일본어 사용을 강요받았던 때로부터 약 100년 만에 언어의 흐름이 뒤바뀐 셈이다.

한글 간판을 내건 일본 도쿄 아사쿠사바시의 한 분식집. (사진=AFP)
한글 간판을 내건 일본 도쿄 아사쿠사바시의 한 분식집. (사진=AFP)
뉴욕타임스(NYT)는 1일(현지시간) 한국 문화의 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한국어가 일본 청년 문화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NYT는 한국어 라벨이 붙은 일본 라면, 남자 주인공이 한국어를 구사하는 일본 TV 프로그램, 광고 모델이 “괜찮아”라고 말하는 일본 차(茶) 광고 등을 사례로 소개했다.

도쿄에 사는 대학생이자 K팝 팬인 다카마쓰 모에카(21)는 일상 대화에 ‘진짜’, ‘미안해’ 같은 한국어를 자주 섞어 쓴다고 했다. 그는 한식당과 화장품 가게가 몰려 있어 도쿄의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신주쿠 신오쿠보 거리에서 “한국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지만 소셜미디어(SNS)에서 유행하다 보니 ‘괜찮아’를 꽤 자주 말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새 일본 대중문화와 광고, Z세대의 일상 대화에서 한국어나 이를 살짝 변형한 표현의 사용이 늘었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합친 ‘한본어’라는 말까지 생겼다.

사사 히로코 사이버한국외국어대 일본어 교수는 “일본, 특히 K팝 팬들 사이에선 한국어 단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쓰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방탄소년단(BTS)이 앨범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를 발매하고 블랙핑크가 도쿄·오사카에서 공연한 2018년을 기점으로 이런 현상이 눈에 띄게 확산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두 언어의 발음이 비슷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워 일본인이 다른 외국어보다 한국어를 쉽게 익힐 수 있고, 한국인도 마찬가지라고 봤다. 한국 정부 자료에 따르면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양국을 오간다. 도쿄의 한국어 학원에서 일하는 후지사와 마야는 “철저히 친구들끼리 쓰는 비격식 표현”이라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확산의 또 다른 계기가 됐다. K팝과 한국 콘텐츠를 접하는 일본인이 늘면서 ‘형’, ‘언니’처럼 일본어엔 딱 맞는 표현이 없는 단어들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최은경 일본 간사이대 한국어 교수는 “한국계가 아니어도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됐다”며 “한국어를 쓰는 건 K팝이나 한국 문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NYT는 이를 두고 “식민지 시대와 비교하면 놀라운 역전”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은 약 40년간 한반도를 지배하며 한국어의 공용어 지위를 박탈하고 법률 문서와 교과서를 일본어로 쓰도록 했다. 한글 신문은 폐간됐고, 1942년엔 한글을 연구·보급하던 학자들을 체포한 ‘조선어학회 사건’이 일어났다.

광복 후 학자들은 표준어를 정립해 한글을 되살렸고, 한국 정부는 2000년대 들어 국어기본법을 만들고 해외 한국어 교육 기관을 세웠다. 이후 한국은 음악·영화 산업의 성공을 발판으로 문화 강국으로 부상했다. 일본은 2000년대 초 K팝이 가장 먼저 진출한 해외 시장 중 하나였다.

(사진=AFP)
(사진=AFP)
다만 한본어가 일본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양국 관계가 최근 개선됐지만 영토 분쟁과 위안부 문제 등 역사 갈등도 여전하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이상철(64)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임원은 “고교 시절엔 한국어가 일종의 비밀 은어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친구들과 ‘담배’, ‘박치기’ 같은 말을 썼다며 “우리끼리만 통하는 말이었다”고 했다. ‘박치기’는 훗날 재일 조선인의 삶을 그린 일본 영화 제목이 되기도 했다.

이씨는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국적으로 선을 긋지 않고 그 자체로 판단한다”며 “긍정적인 흐름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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