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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개봉한 영화 실미도는 1968년 창설된 공군 소속 실미도 부대 북파공작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는 공작원들을 사형수나 무기수 등 흉악 범죄자 출신으로 그렸지만,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실제 부대원 대다수는 평범한 민간인이었다.
기존 상영본에도 “훈련병들의 출신 성분이나 상황 설정이 과거나 현재의 다른 북파공작부대 및 공작원과는 무관하다”는 안내 자막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정작 영화 속 실미도 부대원들의 실제 신분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어, 이들이 범죄자 출신이라는 오해가 사회 전반에 확산하는 원인이 됐다.
새 안내 자막에는 “영화 실미도에서 부대 공작원들을 특수범죄자, 사형수, 무기수로 묘사한 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상황 설정되었습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및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실미도 부대 공작원들 중에 사형수, 무기수가 없었으며, 대부분 일반 민간인이었음을 명확히 규명하였습니다. 영화 실미도로 인해 고통을 받으신 실미도 부대 공작원들과 유족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실미도 부대는 1968년 1월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 대응해 중앙정보부와 공군 주도로 그해 4월 북한 침투를 목적으로 창설됐다. 부대원 수는 북한 무장공비와 동일한 31명이었다. 이 중 7명은 가혹한 훈련 도중 숨졌으며 남은 24명은 3년 4개월 동안 섬에 철저히 격리된 채 사실상 구금 생활을 견뎌야 했다.
혹독한 훈련과 부당한 대우에 내몰린 부대원 24명은 1971년 8월 부대 요원들을 살해하고 탈출해 서울 대방동까지 진출, 군경과 교전을 벌인 끝에 20명이 숨졌다. 살아남은 4명은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공군은 이듬해 사형 집행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채 시신마저 암매장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6년 인권침해에 대한 공식 사과와 유해 발굴을 권고한 데 이어, 국방부는 2024년 10월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장관 명의로 공식 사과한 바 있다.
국방부는 “이번 자막 수정 조치를 통해 공작원들이 사형수나 무기수가 아닌 일반 민간인이었다는 진실이 국민에게 정확히 전달되고, 희생자와 유가족의 명예가 회복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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