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프랑스에서 열린 ‘2023 CEO 세미나’ 폐막식에서 이같이 말했던 건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었다. 빠르게 변화하지 않으면 거대하고 탄탄한 기업도 ‘돌연사’(서든 데스·Sudden Death)할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감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이후 SK그룹은 빠르고 과감하게 리밸런싱(사업구조 개편) 작업에 돌입하며 체질개선에 총력을 기울였다. 비대해진 그룹의 몸집을 슬림하고 탄탄하게 만들면서도 그룹 전반에 쌓인 부실을 털어내는 게 목표였다.
|
그룹 재무구조도 전체적으로 개선했다. 2023년 말 145%였던 부채비율은 올 3분기 128%로 낮췄으며, 같은 기간 순차입금(총차입금-현금성자산)은 84조2000억에서 76조2000억원으로 줄였다.
SK그룹은 지난해 연간 총 2조4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올 3분기까지는 누적 18조2000억원의 이익을 냈다. 반도체 계열사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개발에 필요한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분야에서 선제적으로 확 치고 나간 덕분이다. 지난해 7조7300억원의 적자를 냈던 SK하이닉스는 올 3분기 누적 15조4000억원의 이익을 기록했다.
SK그룹은 올 초 최 회장의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자리에 앉히며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최 부회장은 20년 만에 ‘토요 사장단 회의’를 부활시키며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이후 SK스퀘어의 크래프톤 지분 매각(2660억), SK네트웍스의 SK렌터카 지분 매각(8200억) 등 굵직한 거래를 성사시키며 효율화 작업에 속도를 냈다. 특히 지난 7월에는 지속적인 적자로 재무건전성에 빨간 불이 들어온 SK온을 비롯한 에너지사업 전반의 효율성 향상을 위해 SK이노베이션과 SK E&S를 합병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동시에 SK그룹은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AI 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SK그룹은 지난 5일 임원인사를 발표하며 그룹 전반의 AI 역량 결집을 위해 AI R&D센터를 SK텔레콤 주도로 신설한다고 밝혔다. SK수펙스는 전략·글로벌위원회 산하에 있는 AI·DT TF를 확대 운영키로 했다. SK그룹은 또 AI 사업 도약을 이끄는 SK하이닉스 출신 인재들을 계열사 곳곳에 배치하며 AI DNA 확산에 나섰다.
최 회장은 지난 11월 ‘2024 CEO 세미나’에서 “AI 시장 대확장이 2027년을 전후해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 시기를 놓치지 않고 에스케이가 성장 기회를 잡으려면, 현재 진행 중인 운영개선을 서둘러 완성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