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모식에는 강윤진 국가보훈부 차관과 당시 자금조달 등 의거를 함께 준비했던 오복원(건국훈장 독립장)·김용문(건국훈장 애국장) 지사의 후손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의사는 직계후손이 없어 그동안 이 의사와 의거를 도모했던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이 모여 추모식을 개최해 왔다. 특히 올해는 광복 80년을 맞아 당시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로 이완용을 처단하려 했던 이 의사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처음으로 국가보훈부와 후손들이 함께 행사를 준비했다.
이 의사는 1909년 12월 22일 이완용이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길에 칼로 저격하여 중상을 입혔다. 이로 인해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고 다음 해인 1910년 9월 30일 순국했다.
재판 과정에서 이 의사는 “나의 생명은 빼앗더라도 나의 충혼은 빼앗지 못할 것”이라면서 “지금 나를 교수형에 처한다면 나는 죽어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너희 일본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 의사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한편, 국가보훈부는 후손이 없어 찾아가지 못한 7700여 개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의거지와 도서관, 기념관 등 공공장소에 전시해 그 공적을 국민에게 알리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 의사의 훈장도 의미 있는 장소 등에 전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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