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 근절’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정부가 30년 만에 착수한 농지 전수조사가 수십 년간 땀 흘려 땅을 일궈온 순수 농민들까지 잠재적 범죄자로 몰면서, 시골 땅값은 곤두박질치고 거래는 사실상 완전 마비 상태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칼부터 들이대고 사후약방문...농심(農心)에 불붙인 ‘뒤집힌 행정’
“정부 설명회에 가보면 다들 ‘이 정부 못 믿겠다’는 말부터 나옵니다. 신뢰가 완전히 깨졌어요.”
신동준 파주 광탄농협 조합장은 지난 16일 ‘어쨌든 경제’ 방송에 출연해 격앙된 목소리로 농촌의 흉흉한 민심을 전했다. 신 조합장은 투기 근절이라는 취지 자체를 반대하는 농민은 없다고 단언했다. 문제는 ‘방식’과 ‘순서’였다.
신 조합장은 “전국 농지 중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 수요가 몰리는 곳은 개발 호재가 있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사전에 농지 이용 실태와 장부의 괴리를 파악하고 농민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친 뒤 단계적으로 제도를 정비했어야 맞다”고 짚었다.
정부는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지난 10월 8일 뒤늦게 “상속이나 고령으로 인한 임대 등 비투기 목적 농지는 강제 처분이나 이행강제금 대상에서 제외하는 특별법을 만들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신 조합장은 “농민들 입장에선 일단 ‘처분 명령’이라는 무시무시한 엄포부터 놔두고, 반발이 심하니 땜질식 대책을 내놓는 꼴”이라며 “앞뒤가 뒤바뀐 오락가락 행정에 현장의 불안과 배신감만 더 깊어졌다”고 꼬집었다.
뚝 끊긴 매수세, 무너진 담보...지방 상호금융 ‘부실 경고등’
전수조사 여파는 농촌 실물 경제의 모세혈관까지 마비시키고 있다. 처분 명령과 벌금 폭탄 우려 탓에 외지인은 물론 귀농·귀촌 희망자들마저 발길을 완전히 끊었다.
“팔려고 내놓은 땅은 거래가 올스톱됐고, 급전이 필요해 헐값에 던져도 거들떠보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시장 자체가 사라졌어요” 신 조합장의 설명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금융이다. 농지 가격이 폭락하면서 토지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던 고령 농민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담보 가치가 떨어지자 대출 만기 연장이 막히고, 은행권에서 원금 일부 상환이나 추가 담보를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 바쁜 농가에선 당장 목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고스란히 ‘연체자’로 전락할 판이다. 이는 고스란히 지역 농협의 대출 부실과 건전성 악화, 조합원 배당 축소라는 치명적인 ‘도미노 충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대안으로 내세우는 농지은행이나 농지연금 역시 현장에선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신 조합장은 “신청 대기 물량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기관 예산은 이미 바닥나 가동이 멈춘 상태”라며 “그나마 책정되는 감정가마저 시세보다 턱없이 낮아 농민들이 이용할 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막힌 숨통을 트려면 지역 실정을 가장 잘 아는 농협이 직접 농지를 매입해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의 덫...소유 집착 버리고 ‘농지농용(農地農用)’으로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예고된 참사였다고 입을 모은다. 1949년 해방 직후 지주들의 횡포를 막고 소작농을 보호하기 위해 헌법에 새겨 넣은 ‘경자유전(농사짓는 사람만 밭을 가진다)’ 원칙이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오히려 농촌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됐다는 것이다.
초고령화율 50%를 웃도는 작금의 농촌은 농기계 없이는 농사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다. 몸을 가누기 힘든 80대 노인이 농지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괭이를 들어야 하고, 도시의 젊은 창업농이나 스마트팜 기업은 농지를 빌리거나 사기조차 어려운 모순이 매일같이 벌어진다.
신 조합장은 낡은 잣대부터 깨부숴야 한다고 역설했다.
“누가 땅을 쥐고 있느냐‘는 소유의 문제에 매몰돼 농민들을 죄인 취급할 때가 아닙니다. 이제는 그 땅에서 실제로 농산물이 생산되고 있는가를 따지는 ’농지농용(農地農用)‘으로 국가 농정의 철학을 180도 전환해야 합니다.”
정책 실패 피해, 농민에게 전가 말라...무이자 긴급 수혈 시급
신 조합장은 정부의 결자해지를 거듭 촉구했다.
“물건이 부서지고 집이 무너져야만 재해입니까? 국가가 섣부른 정책으로 농민들의 평생 재산을 묶어버리고 거래를 끊어놓은 이 현실이야말로 국가가 만든 재해입니다.”
그는 거래 절벽이 해소되고 농지 시장이 제 기능을 찾을 때까지, 빚더미에 앉은 농민들을 위한 ’한시적 긴급 무이자 자금 지원‘과 실질적인 피해보전책이 즉각 가동되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탁상에 앉아 펜대로 그어 내린 규제가 흙을 지켜온 농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다. 농촌을 살리겠다는 법이 도리어 농촌을 말려 죽이는 비극을 멈추려면, 정부는 지금이라도 현장의 현실에 귀를 기울이고 농민들의 메마른 손부터 잡아주어야 한다고 신 조합장은 강조했다
신동준 파주 광탄농협 조합장이 출연한 ’어쨌든 경제‘는 매주 금요일 오후 4시 이데일리TV와 유튜브를 통해 생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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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어쨌든경제 방송 캡쳐] 신동준 파주 광탄농협 조합장(사진 우측)이 10월 16일(금) '어쨌든 경제' 방송에 출연해 유은길 앵커(사진 좌측)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https://image.edaily.co.kr/images/photo/files/NP/S/2026/10/PS2610200072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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