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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이처럼 강 회장 집무실 바로 앞으로 투쟁 장소를 바꾼 이유는 지난달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남 창원시 부산신항 한진터미널에서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강 회장에게 직접 산은 부산 이전을 독려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강 회장에게 “부산이 세계적인 해양 도시, 세계적인 무역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금융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며 “산은의 부산 이전을 조속하게 추진해 주시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이에 강 회장은 “이해관계를 잘 조정하고 산은의 경쟁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관계 부처와 긴밀히 협조해 최대한 신속하게 이전을 추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강 회장은 윤 대통령에게 이달 말까지 ‘본사 직원 500명 부산 지점 발령안’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산은 측은 “결정된 바 없다. 현실적으로 현재 사무 공간도 없고 500명에 대한 주거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데 당장 그렇게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직원들 간에 설왕설래로 나오는 얘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 회장은 부산에서 돌아온 직후인 지난 1일 가진 임원 회의 자리에서 ‘대통령의 의지가 명확해 산은 이전은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임원 회의 직후 조윤승 산은 노조위원장의 요청으로 이뤄진 10여 분의 면담에서 강 회장은 대통령의 주문을 질책으로 받아들였다는 전언이다. 조 위원장은 “웃으며 얘기했지만 강 회장은 ‘대통령이 부산에 날 불러 그렇게 얘길 한 것은 부산 이전을 빨리 추진하라는 나에 대한 질타다. 더이상 지금처럼 뭉개고 있을 순 없고,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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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본점의 전체 직원은 약 1500명이다. 이 중 ‘직원 500명 부산 발령’ 얘기가 나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서울에 남겨둘 수 밖에 없는 시중자금 조달 기능과 서울권 영업 직원들을 제외하고 기획, 인사, 총무 등 경영 지원 부서 직원들만 부산에 보내는 것으로도 실질적으로 본점 이전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산은법 4조 1항은 ‘한국산업은행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본점 이전을 위해선 법 개정이 필수다. 하지만 산은 본점 이전 관련 법안은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반대 여론이 높아 국회에 계속 계류 중이며, 향후 본회의 통과 역시 불투명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규모 직원 발령은 ‘꼼수 이전’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사안으로 인식된다.
산은 노사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산은 직원들의 동요도 더욱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 듯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산은 부지를 헐값으로 특정 재벌 그룹에 매각하려고 본점 부산 이전을 추진한다’는 내용 등의 루머들도 양산되고 있다.
지난 7월 말 기준 임금피크제 대상자를 제외하고 이직 등을 이유로 올해 산은을 떠난 직원들은 40여 명이다. 이는 통상 한 해 전체 퇴사자 수준과 맞먹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