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AI법이나,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진행 중인 ‘첨단 AI 시스템을 위한 안전과 보안 혁신법안(Safe and Secure Innovation for Frontier Artificial Intelligence Systems Act)’의 고성능 기준은 국내 사업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국내 법에서는 규제 대상이 될 위험이 존재한다.
정부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만을 대상으로 법을 집행할 것인지, 아니면 기준을 한국 현실에 맞게 조정할 것인지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기준을 지나치게 낮출 경우, 외국 기업들은 규제에서 빠져나가고 오히려 국내 기업만 규제 대상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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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성능AI 기준 외국보다 낮아지나
지난 21일 한국인공지능산업협회가 주최한 조찬 모임에서 김명주 AI안전연구소장은 “AI기본법 제32조에 따르면, 누적 연산량이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안전성을 확보할 의무가 있으며, 이와 관련된 자료를 제출하고 고지해야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행 방법은 하위 법령에서 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이어 “AI 규제기관(AI안전연구소)을 설립한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관련 뉴스에서는 ‘국내 기업이 AI 경쟁력도 부족한데 규제부터 시작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댓글이 많이 달린다”면서 “저희도 이러한 우려를 잘 알고 있다. 저 역시 개발자 출신으로, 우리 연구소는 AI 기업들이 안전을 기반으로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세르파(Sherpa) 역할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AI 기업이 AI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발전하다 나중에 문제를 겪지 않도록, 처음부터 전문적인 안전 그룹의 도움을 받으며 발전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그는 안전성 관련 자료 제출이 의무화되는 고성능 AI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유럽의 AI법은 10의 25승 이상의부동소수점 연산(FLOPs)을, 캘리포니아주 AI법안은 10의 26승 이상의 FLOPs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김명주 소장은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품은 해당 사안이 없고, 결국 외국 기업이 국내에서 서비스했을 때 할 수 있는 기준으로 볼 수 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이 외국에 나가 (외국 기준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될 경우를 미리 도와주기 위해 결국은 고시에 내려가 우리나라 형태의 연산량 프로덕트 기준을 좀 낮추거나 아니면 다른 각도에서 정리하거나 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사항은 없으며, 기업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할 계획”이라면서 “ 미국 쪽에서도 연락이 온다”고 덧붙였다.
국내 기업들은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나 LG AI연구원의 엑사원 같은 국내 기술만 규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보스 포럼 연설에서 EU의 빅테크 규제를 겨냥해 “매우 큰 불만이 있다”고 언급한 상황에서, AI 첨단 기술에서 앞서 있는 미국 기업들은 한국의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정부가 쉽게 규제할 수 있는 국내 기업만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경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공지능정책관은 “연산량이 높은 외국 제품은 규제하지 않고, 국내 기업들만 규제하는 역차별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AI 행정명령을 폐기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AI 기본법 자체에 고성능·고영향 AI 규제를 포함해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마련되기까지 정부의 고심은 깊을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