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풍서 태풍으로 번질라…택배노조 파업 장기화 분수령

유현욱 기자I 2021.06.15 17:03:32

15~16일 사회적 합의기구 회의 소집
택배노조, 장외 대규모 집회 강행
울산지역 등 배송 지연 속출
신선식품 배송 불가 타격도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울산 중구에 사는 39세 A씨는 “(며칠 전)주문한 물건이 서브터미널(중간 집하장)에 빠져 오도 가도 않는다. (일을 하면서) 갓난아기를 키우고 있어서 뭐든 택배로 주문해야 하는데 큰일 났다”고 말했다. 지난주부터 울산지역 맘 카페가 발칵 뒤집어졌다. 배송 지연 및 불가 사례가 속출하면서 문앞까지 상품을 가져다주는 온라인 쇼핑으로 육아를 병행해온 워킹맘(직장 다니는 엄마)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노동자의 도시’라는 울산은 지난 9일부터 들어간 택배노조 총파업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택배 업계와 택배노조 울산지부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울산지역 전체 택배기사 1100여 명 중 380여 명, 약 35%가 택배 업무를 중단했다. 파업 참여율은 전국 최고 수준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울산으로 향하는 물건은 사실상 모든 택배사가 신청조차 받지 않고 있다.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전국 택배노동조합 소속 우체국 택배 노동자들이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상경 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들 택배사와 시스템이 연동해 있는 온라인 쇼핑몰은 울산에 사는 고객의 주문을 어쩔 수 없이 취소해야 한다. 기어이 접수한 물량은 반품 처리되는 실정이다. 택배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큰 불편을 실감하지 못하는 서울지역 주민과 달리, 울산은 ‘택배 대란(큰 난리)’에 내몰리고 있다. 울산뿐만 아니라 경기 성남, 경남 창원·거제 등 파업 참여율이 높은 다른 지역들 역시 배송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15일로 택배노조의 파업이 일주일째에 접어든 가운데 점차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 “오죽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동조하던 민심에 “고객을 볼모로…”라는 반감이 스멀스멀 퍼지고 있는 것이다. 전체 택배기사(5만5000여 명) 중 일부(6500여 명)만 택배노조 조합원인 데다 실제 단체행동에 동참하는 이들은 훨씬 더 적으리라고 평가절하하던 택배사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

파업으로 말미암은 직간접적인 피해 규모는 추산이 어렵다. 다만 온라인 매출 비중이 큰 곳, 배송 지연이 곧장 손실로 이어지는 곳은 직격탄을 맞았으리라고 예상된다. 특히 6월 제철을 맞은 참외 농가는 한창 주문을 받아 택배로 보낼 시기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 오뚜기몰, 힐리브몰, 헬리녹스 등 온라인 쇼핑몰은 첫 화면에 배송 지연(불가)을 알리는 배너를 띄우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현재는 파업의 여파가 지역별로 온도 차가 있지만, 사태가 더 장기화하면 전국적인 택배 대란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때 소화하지 못한 물건이 터미널에 쌓여 이동을 막으면서 동맥경화처럼 마비가 오리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날부터 16일까지 이틀간 국회에서 열리는 사회적 합의기구 회의가 이번 사태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택배노조가 같은 기간 조합원 5500여 명이 참여하는 상경집회를 계획하고 회의를 하루 앞둔 14일 서울 여의도 포스트타워 1층 로비에서 점거 농성에 돌입하며 투쟁수위를 끌어올린 이유이기도 하다. 파업이 진행 중이던 지난 13일 새벽 롯데글로벌로직스 택배기사가 뇌출혈로 쓰러진 점도 이번 사태와 맞물려 여론에 집중 조명을 받았다.

지난 8일 합의가 결렬된 이후 일주일 만에 다시 마주한 노사정은 사회적 합의안 시행 시점과 노동시간 감축에 따른 수수료 보전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안 시행 시점에 대해 택배노조는 지난 1월 1차 사회적 합의안 발표 이후 5월까지 넉 달 가까이 충분한 준비기간을 줬다며 즉시 시행을 주장한다. 반면 택배사들은 정부의 중재 끝에 당초 ‘1년 유예’에서 물러난 ‘연내 시행’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택배사들은 분류 인력 투입과 분류 자동화 기기 설치에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만큼 합의안 적용 시점을 늦춰 달라는 입장이다.

택배노조는 과로사 방지를 위해 정부가 제시한 주 평균 60시간 이내로 노동시간을 줄이면 배송만 하는 택배노동자 임금이 줄어든다며 물량 감소분에 따른 임금 보전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물량 감소분에 대한 수수료 보전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택배노조가 반발하고 있다.

이견을 좁히지 못한 노사정은 오는 16일 오후 사회적 합의안 타결을 재차 시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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