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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신정은 기자] `부동산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아시아 최고 재벌 리카싱(李嘉誠·87) 홍콩 청쿵(長江)그룹 회장이 자신의 제국을 유럽으로 옮겨가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 에너지·철도·유통 기업을 잇달아 사들인 리 회장은 이번에 O2를 인수해 영국 최대 이동통신사로 올라선다. 반면 중국내 자산은 청산하면서 홍콩을 떠날 채비를 갖췄다.
정확히 1년전 사상 처음으로 리 회장이 이끄는 허치슨왐포아는 홍콩과 중국 본토를 합친 것보다 많은 매출을 유럽에서 올렸다. 이 발표 다음날 리 회장은 “유럽 경제가 아직까지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지만 우리의 유럽사업 성적은 상대적으로 훌륭하다”며 “허치슨왐포아는 해외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야심을 드러났다.
◇ 유럽 기업 쇼핑나선 리카싱… 英 1위 이통사로 변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현지시간) 허치슨 왐포아가 영국 이동통신 업계 2위인 O2를 105억파운드(약 17조4000억원)에 구입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허치슨은 지난 두 달간 O2를 정밀 검사한 결과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영국 통신사 쓰리(3)를 소유하고 있는 허치슨은 이번 인수건으로 영국 이통시장에서 점유율 41%를 차지해 최대 통신사로 올라서게 된다. 두 이통사 가입자만 3100만명에 달한다.
허치슨은 유럽 반독점 당국에 의해 조사를 받을 전망이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거래가 이미 독일,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등에서 통과된 만큼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FT는 설명했다.
리 회장은 올들어 유럽 기업 M&A 속도를 높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은 리 회장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근까지 해외 M&A에 투자한 금액이 340억달러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5일 소식통을 인용, 리 회장의 아들 리차드 리가 소유하고 있는 홍콩 이통사 PCCW가 프랑스 통신사 오렌지텔레콤의 동영상 공유사이트 데일리모션 지분 49% 매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PCCW는 단독 협상에 들어갔으며 데일리모션의 기업가치를 부채 포함해 2억5000만유로를 제안했다.
또 중국 증권일보에 따르면 청쿵그룹은 영국 3대 열차 임대업체 에버숄트 레일그룹 인수도 추진하고 있다. 협상 시한은 이달말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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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쿵그룹-허치슨 사업부 재편…중국 떠날 채비중
올해 초 리 회장은 대대적인 사업 개편안을 발표했다. 지난 1월 리카싱 회장은 홍콩증권거래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동산 투자회사인 청쿵실업과 항만, 통신사업을 하는 허치슨 왐포아를 합병한 후 다시 부동산과 비부동산 사업으로 분리해 각각 CK부동산, CKH지주회사라는 두 개의 기업을 설립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지주회사는 조세 피난처인 영국령 케이만 제도에 법인 등록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내 자산을 계속해서 처분해왔던 리카싱은 중국을 떠날 채비를 마무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리 회장은 지난 2013년부터 중국 부동산 시장에서 엑소더스(Exodus) 조짐을 보였다. 청쿵그룹은 2년 전 상하이 오리엔털파이낸셜센터와 광저우 두후이광장 등을 매각했고, 지난해에는 난징 국제금융센터(IFC)와 베이징 잉커센터 등을 팔아 치웠다. 리 회장이 지난 1년8개월 동안 처분한 중국 내 부동산 규모는 250억위안(약 4조원)이 넘는다.
청쿵그룹은 그동안 이같은 행보를 사업 재편에 따른 투자라고 설명해왔지만, 중국 부동산 시장에서 철수하는 자금을 사실상 해외로 이동하고 있는 수순이라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인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