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어카운트, '레고랜드 사태' 이후 성장 제자리걸음…"투심 회복 요원"

신하연 기자I 2025.01.13 17:05:20

일임형 랩어카운트 잔고, 지난해 11월 말 93.6조 수준
2021년 151조원 규모→2023년 말 90조원대로 '급감'
7~26% 증가한 펀드 대비 초라한 성장세
랩·신탁 제재까지 겹치며 업계·투심 모두 위축

[이데일리 신하연 기자] 고객의 투자 성향에 맞춘 운용 방식으로 자산을 대신 관리해주는 증권사 랩어카운트(맞춤형 종합자산관리계좌) 투자심리가 지난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설상가상으로 금융당국의 랩·신탁 제재 논의가 길어지면서 부담을 키웠다. 증권사들은 다양한 랩 상품을 내놓으며 분위기 전환에 나서고 있지만 시장 회복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1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가장 최근 집계치인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 일임형 랩어카운트의 잔고는 93조 6730억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 말 151조원대를 기록했던 일임형 랩어카운트는 2022년 하반기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 신청이 촉발한 자금시장 경색 직격탄을 맞으며 하락 곡선을 그리기 시작해 2023년 12월에는 90조 626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랩어카운트 잔고는 2024년 들어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며 8월 말 기준 96조원까지 늘었으나 같은 해 9월부터 다시 증가세가 꺾이며 연초 수준으로 돌아간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말 잔고는 2023년 말 대비 3조 470억원(3.36%) 늘었는데, 같은 기간 공모펀드(329조 1940억원→426조 7390억원)와 사모펀드(595조 6510억원→638조 6200억원) 설정원본이 각각 29.63%, 7.21%씩 증가한 데 비해 초라한 실적이다.

설상가상으로 2023년 5월부터 금융감독원이 랩·신탁 관행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면서 관련 투자심리가 더 위축됐다. 당초 지난해 중으로 결론 짓기로 했던 최종 제재 수위는 현재까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주요 증권사들도 랩어카운트 상품 개발과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힘든 분위기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나마 지난해 고객수와 계약건수가 소폭 증가세를 보였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일임형 랩어카운트 고객 수는 186만 6217명으로 2023년 말 184만 6800명 대비 2만명 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계약건수도 202만 3961건에서 204만 4816건으로 2만건 넘게 늘었다.

증권사들도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시장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랩어카운트를 출시하며 분위기 반전을 모색하고 있다. 하나증권은 이달 초 은퇴를 앞둔 시니어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하나더넥스트 랩 시리즈’를 출시했다. 국내투자형과 해외투자형 상품 두 가지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11월 해외투자형 랩어카운트 3종을 내놨다. 혁신 초기 기업부터 탄탄한 현금 흐름을 보여주는 성숙 성장기업까지 미 증시에 상장된 기업에 폭넓게 투자할 수 있다. 미국증시에 투자하는 이른바 ‘서학개미’의 수요를 흡수하기 위한 복안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9월에는 KB증권이 국내 인공지능(AI) 기업인 크래프트 테크놀로지스와 함께 AI 랩어카운트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다. 미국 주식 위험 예측 AI 모델이 데이터 프로세싱, AI 모델링, 신호 산출·포트폴리오 생성 등 3단계를 거쳐 최적의 미 주식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위험을 관리하는 식이다.

다만 랩어카운트에 대한 시장의 투자심리가 회복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종 제재 수위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증권사들이 적극적인 영업을 하기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국 규제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랩신탁 시장의 정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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