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력 경제 매체 포브스가 지난 6일(현지시간) 내놓은 정치 이슈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분석이 결국 현실이 됐다.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이어진 탄핵 정국 장기화로 인해 한국 증시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크게 훼손되고,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답습할 수 있단 경고다. 폭락장마다 등판해 장을 떠받쳤던 개인투자자들도 등을 돌렸다.
◇한국 주식시장, 개미들도 등돌리나…9000억원 매도
9일 엠피닥터에 따르면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폐기된 이후 첫 거래일인 이날 개인 투자자들은 유가증권시장에서 886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개미들은 지난 8월 ‘검은 월요일’ 당시에도 코스피를 1조7000억원 순매수하며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이번엔 달랐다. 코스닥에서도 3113억원을 매도해 총 매도액은 1조1973억원에 달했다.
이에 이날 증시는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직후 거래일보다 더 새파랗게 질렸다. 전장보다 1.47% 내려 출발했던 코스피 지수는 오후 들어 낙폭을 확대해 67.58포인트(-2.78%) 내린 2360.58에 거래를 마감해 연저점을 경신했다. 코스닥지수도 5.19% 급락했다.
연기금이 가세해 기관투자자들이 6907억원을 매수했음에도 지수 하락을 막지 못했다. 사흘 연속 1조원 넘게 팔아치웠던 외국인은 이날 1034억원어치를 사들였지만 지수 방향에 영향을 주기엔 부족했다.
이날 코스피 및 코스닥 시장에서 52주 신저가 종목은 1270개 넘게 쏟아졌다. 신저가가 1000개를 돌파한 것은 지난 8월 ‘검은 월요일’ 이후 126일 만이다. 전체 거래종목 2631개(상장종목 2735개)의 48.3%에 달하는 수치다. 8월 당시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에 중동의 전쟁 확산 가능성 등 우려 요소가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만들며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8.77%, 코스닥은 11.3%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신뢰 떨어진 코리아…디스카운트 가속도
국내 정치 불안정성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와 ‘외톨이 증시’ 현상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치가 경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면서 ‘패닉셀’이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과 비교해 이번 윤 대통령 탄핵 정국이 과거와 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탄핵 정국의 장기화로 인해 국가 신인도 하락 위험이 현실화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증시의 ‘외톨이 증시’ 현상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도 이날 “과거 노무현·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정치적 불안정이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이번엔 다르다”며 “한국은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지닌 국가들과 함께 중국 경기 둔화와 미국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외부 역풍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 불안에 외부 역풍까지 겹치면 이중고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여전히 현재의 주가 수준을 저가 매수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동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의 주가 수준은 과도한 공포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며 “장기 투자자들에게는 좋은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바닥 밸류에이션에 대한 전망은 증권사마다 차이를 보인다. LS증권 정다운 연구원은 코스피 주가순자산비율(PBR) 0.805배 수준인 2300선에서 하방 지지를 예상했다. iM증권 이웅찬 연구원은 코스피 2400 수준에서 저가매수를 시작하고 저점을 2250으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탄핵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보유 주식 매도나 추격 매수 등 적극적인 매매를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 필요성도 나온다. 박 연구원은 “수출이 더 이상 경기의 강한 보호막 역할을 하기 힘들어진 상황에서, 심리적 위축과 금융시장 불안을 최소화해 내수 경기를 방어할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1월 추가 금리 인하와 같은 통화완화책 고려, 확장적 재정 기조로의 선회, 기업들의 자금경색 위험을 막기 위한 추가 유동성 정책 추진 등이 제시됐다. 또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 하락을 막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도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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