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 중 하나인 데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대미 투자 등 ‘원하는 바를 모두 이행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돌아온 건 예상을 크게 웃도는 고율 관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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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2025년 4월 2일은 미국의 ‘해방의 날’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상호관세 조치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기본적으로 모든 국가에 10% 관세를 적용하고, 무역적자가 큰 국가·지역에는 개별적으로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기본 관세 10%는 미 동부시각으로 5일 0시 1분, 추가 관세 오는 9일 0시 1분부터 발효된다.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법적 근거는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연간 1조 2000억달러에 달하는 무역적자와 자국 산업의 공백을 근거로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무역적자가 큰 일본에 대한 관세율은 24%로 책정됐다. 미국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일본과의 상품 무역에서 685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국가별로 7번째로 큰 적자 규모다.
일본은 추가 관세가 부과된 ‘최악의 위반국’ 60개국에도 포함됐다. 일본이 미국과의 긴밀한 동맹 관계를 앞세워 면제까진 아니더라도 낮은 관세율을 기대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뒤통수를 맞은 것이란 평가다.
앞서 이시바 총리는 지난 2월 직접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읍소’했다. 당시 그는 일본의 대미 투자액 1조달러 확대, US스틸에 대한 투자,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의 수입 확대, 국방비 대폭 확대 등 말 그대로 ‘선물 보따리’를 안기고, 상호 이익을 위한 관세 설정 약속을 받아냈다.
일본은 이미 미국의 최대 외국인 직접투자자로 2023년 기준 7833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했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동안 1000억달러 투자를 약속하는 등 지원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일본은 회담 이후 상호관세, 자동차 관세 등의 부과 대상에서 일본을 제외해달라고 미국에 수차례 요청했다. 하지만 미 정부는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관세율을 이날 일본에 부과했다. 자동차에 대한 관세 25%도 이날부터 발효됐다.
미국은 일본이 수입 쌀에 고율 관세를 매기는 것을 걸고 넘어졌다. 아울러 관세뿐 아니라 소비세, 환율 정책, 각종 규제 등 비관세 장벽도 고려해 관세율을 결정했다고 미 정부는 설명했다. 미 정부는 비관세 장벽 등을 반영하면 일본이 미국산 제품에 실질적으로 46%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외국 정부들이 미국 제품에 과도한 관세를 부과하고, 비관세 장벽을 만들어 미국 산업을 파괴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을 콕 집어 자동차 산업 규제를 문제 삼았다. 특히 “일본은 쌀에 70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며 강력 비난했다.
문제는 일본이 보복 대응에 나서기 어렵다는 점이다. 앞서 이시바 총리는 보복 관세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자칫 외교·안보와 관련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결국 다른 나라들의 대응을 살펴보며 보복 조치에는 신중하게 접근하기로 했다.
한편 미 정부는 이날 일본 외에도 유럽연합(EU) 20%, 인도 27%, 한국 26% 등 다른 동맹국들에도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앞서 25% 관세를 부과한 캐나다와 멕시코는 상호관세 적용 대상에선 제외됐다. 하지만 향후 과세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적국인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율은 34%로 책정됐다. 지난 2월과 3월 10%씩 부과된 추가 관세까지 합치면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관세율이 총 54% 높아진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미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60%에 근접하는 수치다.
자동차·자동차부품, 철강·알루미늄 등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도 이날 상호관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