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부는 최근 이탈리아 시민권 신청 자격을 부모·조부모 세대로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지난 3월 발효됐으며, 전날 최종 법제화됐다.
기존엔 1861년 이후에 이탈리아에 거주한 시민의 직계 후손이라면 누구나 여권을 신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중남미에서 이탈리아 시민권 신청이 급증하자 새로운 규정을 내놓은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기존 제도에선 최대 8000만명이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어 행정적인 부담이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해외 신청자만 6만건이 밀려 있는 상황이다. 안토니오 타야니 외무장관은 “시민권은 단순 여행용이 아니다. 이탈리아와 진정한 연계가 있는 이들에게만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27일 자정까지 접수된 시민권 신청은 기존 규정이 적용되지만, 이후부터는 부모 또는 조부모가 이탈리아 출신이어야만 시민권을 자동으로 받을 수 있다. 2세대 이후(증손주·고손주 등)는 신청이 불가능하다. 다만 이미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이나, 미국 귀화로 이탈리아 국적을 상실한 이들은 재신청이 가능하도록 일부 예외 조항이 마련됐다.
중남미에 거주중인 이탈리아계의 저항은 당초 예상됐으나, 엉뚱하게 미국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이민자 규제 강화로 유럽으로 이주하려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이 증가하고 있어서다. 미국 내 이탈리아계 인구는 약 1600만~2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와 별도로, 미국 정부 역시 이탈리아 여권을 소지하고 자국에 무비자로 입국하는 등 체류자가 확대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이탈리아 시민권 전문 변호사인 마르코 페르무니안은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은 조상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이번 법 개정은 ‘개인적’(인 뿌리·정체성·가족사 문제 등)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 법적 대응 움직임도 활발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내 이탈리아계 단체들은 긴급 청원 운동과 로비를 벌이고 있다.
미국 내 이탈리아계 단체들은 “수십년 간 시간과 비용을 들여 준비해온 신청자들이 하루 아침에 자격을 잃었다”며 “이탈리아와 미국 간 유대 약화, 정체성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 의회 내 이탈리아계 의원들도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멜로니 정부에 재고를 촉구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시민권) 남용 방지와 행정 효율성 제고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미국과 중남미 이탈리아계 사회의 반발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라고 FT는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