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공무원…'퇴근 후 카톡·초과근무' 제한한다

박철근 기자I 2017.03.08 15:37:32

인사처, 일·가정 양립 위한 ‘근무혁신 지침’ 시행
주말·공휴일 근무 및 퇴근 후 업무연락 제한키로
임신부 2시간 휴식·하루 1시간 자녀돌봄 시간 보장
“강제성 없어 상급자 인식개선 없인 무용지물”

인사혁신처는 공직사회에 퇴근 이후 카카오톡 메시지 등 업무연락을 자제하고 유연근무제 확산 등 공무원 근무혁신 지침을 발표했다. 세종청사 공무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사진= 뉴시스)
[이데일리 박철근 김상윤 박종오 기자] 경제부처에서 일하는 사무관 A씨는 카카오톡 메신저의 단체카카오톡방(단톡방)만 20개가 넘는다. 소속 실뿐만 아니라 국·과·프로젝트별로 단톡방을 만든 탓에 밤에도 쉴새없이 울리는 ‘까톡’소리에 시달린다. 소리를 꺼놓을까 싶었지만 곧바로 답신이 없으면 화를 내는 상사가 있는 단톡방 때문에 포기했다.

기획재정부에 근무하는 주무관 B씨는 퇴근후에도 수시로 카카오톡을 확인한다. 과거 상사가 카카오톡으로 물어온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가호되게 질책당한 경험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앞으로 퇴근후에는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세지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될 것으로 보인다. 인사혁신처는 앞으로 퇴근한 직원에게 카카오톡이나 전화, 문자메시지 등으로 연락하는 행위를 제한하기로 했다. 아울러 개인 사정과 업무별 특성에 맞춰 업무시간을 조정하는 유연근무제를 확대한다. 근무 중 임신부 휴식·육아시간 보장 등 모성보호를 위한 제도도 활성화한다. 공직사회는 이같은 지침에 환영의 뜻을 보내면서도 현실적으로 시행이 쉽지 않을 것으로 우려했다.

◇ 퇴근 후 업무연락 자제·유연근무제 확산

인사혁신처는 8일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2017년 공무원 근무혁신 지침’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인사처는 공무원이 퇴근한 후 최소 9시간의 휴식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유연근무제 등을 활용해 새벽 1시에 퇴근했다면 출근 시간을 오전 10시로 조정하는 식이다.

인사처 관계자는 “긴급한 현안이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면 주말, 공휴일 근무를 엄격히 제한할 것”이라며 “초과근무를 유발하는 퇴근 직전 업무지시 및 회의, 퇴근 후 카톡 등 업무연락 등을 자제토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연근무제 활성화에도 박차를 가한다. 지난해 인사처가 45개 부처를 대상으로 실시한 유연근무제 활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연근무제를 활용한 공무원은 3만7301명으로 전년(2만7257명)대비 1만44명(36.8%) 증가했다.

인사처는 “점심시간 앞뒤 1시간을 자율적으로 활용해 자녀돌봄이나 자기개발 등에 사용토록 장려할 것”이라며 “유연근무제 활용 우수기관에 포상을 수여하는 등 모범사례 전파에 주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서 전체가 일찍 출근하고 빨리 퇴근하는 등의 방안도 적극 독려하겠다”며 “부서별 유연근무 활용실적을 정기적으로 기관장에게 보고토록 했다”고 덧붙였다.

(자료= 인사혁신처)
◇ 임신부 2시간 휴식 보장 등 모성보호 강화

인사처는 법적 근거는 있지만 실제로 이행하지 않던 제도들을 적극 활용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대표적인 제도가 모성보호·육아시간 이용제도다. 현재 태아 및 모성보호를 위해 임신 12주 이내 또는 임신 36주 이상인 여성공무원은 1일 2시간 범위에서 휴식이나 병원진료가 가능하다. 생후 1년 미만의 아이가 있는 여성공무원은 하루 한 시간의 육아시간 이용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인사처는 “각 부서장은 임신·육아기 직원을 파악해 모성보호·육아시간 이용이 가능토록 안내해야 한다”며 “해당 직원의 명단을 통보하고 과다한 업무지시를 자제토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사처는 육아시간 이용대상을 남성공무원까지 확대토록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개정안을 이달 중에 시행할 예정이다.

다만 육아시간 이용제도의 경우 아이를 보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업무효율성이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

박제국 인사처 차장은 “지난해가 공직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근무혁신의 원년이었다면 올해는 일과 휴식이 균형잡힌 공직문화를 조성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처는 이번 지침을 각 부처에 전달하고 이달 말까지 부처별 추진계획을 제출토록 할 계획이다. 일·가정 양립문화 추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등과 함께 협의체를 구성해 공직사회 근무제도 개선을 위해 머리도 맞대기로 했다.



◇ “강제성 없어 상급자 인식개선 없인 무용지물”

공직사회는 이같은 인사처 지침에 반색하면서도 실효성이 있을 지 의문이라는 반응이다. 인사처 지침에 강제력이 없다는 것을 가장 큰 한계로 꼽는다.

경제부처의 한 사무관은 “민간기업이나 공무원이나 요즘은 업무관련 단톡방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귀가했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닌데 인사처 지침대로 지켜질 지가 의문”이라고 전했다.

공무원들은 유연근무제, 육아시간 이용제도 등도 상급자들의 인식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무용지물로 전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자체에서 근무하는 한 사무관은 “국장이 주말에 출근하면 과장과 사무관도 당연히 출근하는 게 공직사회 풍토”라며 “상명하복이 철저한 공직사회에서 상사가 앞장서지 않는 한 인사처 지침은 그저 꿈같은 얘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인사처가 지난달 발표한 유연근무제 이용실태 설문조사에서 유연근무제 활성화를 위해 개선할 사항으로 ‘상사나 동료의 부정적 인식’(27.7%), ‘간부급 이상 유연근무제 우선 활용’(16.9%) 등을 꼽았다.

인사처 관계자는 “당장 모든 지침이 실천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분기·반기별로 이행상황을 점검해 점진적으로 공직사회에 일·가정 양립문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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