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교사라서 감경? 전문직일수록 더 엄격한 책임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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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아 기자I 2026.03.10 11:20:03

[전문직 성범죄 솜방망이 처벌 논란]②''박윤희 전 중앙지검 부장검사 인터뷰
"전문직 지위, 암묵적 감경 요인으로 작용…제한 요건 필요"
"약식기소 단계서 피해자 의견 청취 강화해야"
"초범·반성 이유 감경, 범죄 실질적 위험성 간과"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의사나 교사 등 전문직은 사회적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직업입니다. 그들을 통해 범죄 피해를 입으면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고, 오히려 그 지위를 이용해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2부장 출신 박윤희 변호사. (사진=노진환 기자)
19년간 검찰에 몸담았던 성범죄 전문가 박윤희(사법연수원 36기) 변호사는 10일 이데일리와 전문직 성범죄 가해자의 직업적 사정을 양형고려사유로 삼는 관행에 대해 “직업적 불이익을 감경 사유로 고려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고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직 성범죄 가해자가 양형 과정에서 직업적 불이익을 호소하며 선처를 구하는 관행은 법조계 안팎에서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돼 왔다. 박 변호사는 “평생을 쌓아온 커리어가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에 선고하는 판사 입장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는 있다”면서도 “성범죄는 특성상 오히려 전문직 종사자로서 더욱 높은 윤리적 기준이 요구되는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문직이라는 이유로 감경받을 수 있다는 인식보다 전문직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성범죄 중에서 카메라촬영범죄 판결의 80% 이상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는 현실도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불법촬영은 범죄 특성상 피해자가 범행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적발되지 않는 범행이 상당수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며 “단순 ‘초범’이라는 이유로 감경하는 것은 범죄의 실질적 위험성을 간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초범이라 하더라도 범행태양(범죄를 저지른 구체적인 모습이나 수단, 방법), 피해자와의 관계, 촬영 내용 등을 고려해 감경 여부를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성’을 이유로 한 감경 관행도 마찬가지다. 박 변호사는 “단순히 범행을 인정하고 형식적으로 반성의 태도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감경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진정성 있는 반성인지, 피해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 있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의 약식기소 관행도 피해자 보호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약식기소를 하면 형사소송법 제457조의2(형종 상향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하더라도 판사는 벌금형을 초과하는 형을 선고할 수 없다.

박 변호사는 “약식기소 제도는 경미한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합리적인 제도”라면서도 “피해자가 있는 경우는 약식기소 이전에 피해자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신중하게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검찰에 의견을 피력해 검사로 하여금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도 충실히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피해자가 입는 정신적 고통을 양형에 반영하는 제도적 개선도 시급하다고 봤다. 박 변호사는 “피해자들은 유포 전에는 혹시나 사진 등이 유포될까 노심초사하면서 불안에 떤다”며 “실제 유포 이후에는 대인기피증이 생기거나 이름을 개명하기도 하고 성형수술을 해 얼굴을 바꾸기도 하는 등 사회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불법촬영으로 인한 영상·사진이 유포되면 삭제하더라도 어디선가 다시 좀비처럼 살아나 인터넷에서 떠돌기 때문에 이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거의 평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며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돈을 벌 때마다 사비를 들여 불법촬영물을 삭제하는 것이 거의 일상이 되다시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법정형을 높이거나 치상죄로 가중처벌 규정을 두거나, 불법촬영물이 광범위하게 유포돼 삭제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를 양형이나 가중사유로 적극 반영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다만 “유포 가능성 자체를 가중처벌 요소로 법제화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유포 가능성은 추상적 개념이라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예측가능성과 명확성의 원칙에 반할 가능성이 높다”고 선을 그었다.

박윤희 변호사(전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2부장). (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박 변호사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인터넷, 인공지능(AI)가 발달할수록 범죄인 줄 모르고 피해를 당하거나 미처 범죄인 줄 모르고 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며 “검사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죄를 짓는 사람도 줄어들고, 피해를 당하는 사람도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서울대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2007년 서울동부지검 검사로 임관한 뒤 성범죄·스토킹·아동학대 분야 전문가로 19년간 활동해 왔다. 2023년 대검 형사4과장으로 전국의 성범죄 수사를 총괄했고, 지난해 1월에는 ‘스토킹처벌법 벌칙해설’을 집필했다. 2024년 6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서울중앙지검에서 여성아동범죄 사건 수사를 지휘한 그는 지난해 9월 서울 서초동에 ‘변호사 박윤희 법률사무소’를 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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