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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대선후보]성남 시장 상인들이 본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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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성 기자I 2025.05.21 17:30:00

고희를 바라보는 상인들 "책 읽는 효자" 회상
삶의 터전이었던 시장에서 어렵게 삶 일궈
변호사·시장 되고도 격 없이 상인들과 어울려
시장에서의 경험, 정책 아이디어로 이어지기도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성가현 수습기자] 장애를 입은 소년공에서 제1당 유력 대선주자가 된 이재명. 그와 가족들의 터전은 시장이었다. 시장 골목에서도 최하층민의 삶을 살았던 소년 이재명은 어렵게 삶을 일구면서 시장에서 자랐다. 그를 기억하는 성남시 상대원시장 상인들도 이젠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그들은 어머니 대신 공중화장실을 지키며 책을 읽던 소년 이재명을 기억하고 있었다.

상대원시장의 소년 이재명

1976년 2월 23일 비와 싸락눈이 섞여 내리던 새벽녘, 소년 이재명과 그의 부모, 형제들이 성남에 도착했다. 늦겨울 단대오거리에서 그들이 살 반지하 셋방으로 가는 길은 진창이었다. 소년 이재명도 바리바리 짐을 들고 질퍽한 길을 올라야 했다.

먼저 시집간 누나 둘을 뺀 여덟 식구가 그곳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된 게 위안이었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은 여전했다. 그들은 곧장 상대원시장에서 돈을 벌어야 했다.

서민들이 모여 있는 시장통에서도 소년 이재명과 그의 가족들은 최하층의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새벽부터 시장 청소부로 일했고 어머니는 공중화장실 앞을 지키며 요금 받는 일을 했다. 소변은 10원, 대변은 30원이었다.

소년 이재명과 그의 어머니가 지키던 공중화장실이 있던 건물 터. 지금은 새 건물이 지어져 예전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성가현 이데일리 수습기자)
그의 어머니가 지키던 화장실이 있는 건물은 사라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근처 상인 조 모씨(69)는 공중화장실 앞에 있던 소년 이재명과 그의 어머니를 기억했다. 그는 소년 이재명을 회상하며 “효자”라고 지칭했다. 공장 일에도 틈틈이 어머니 대신 공중화장실 앞을 지켰다. 조 씨는 “화장실을 지키면서도 책을 읽곤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도 소년 이재명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아버지를 닮아 ‘머리가 좋다’라는 얘기를 들었던 소년 이재명은 집안의 희망이었다. 소년 이재명이 공장에서 늦게 퇴근하는 날에도 그를 기다렸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학교가 아닌 공장으로 향한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컸다.

아버지는 쓰레기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상대원시장 곳곳을 다녔다. 과일상점에서 버리는 과일 중에 덜 상한 게 있으면 주워 담았다. 식구들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그가 갖고 온 과일은 그날 집에서 다 먹어야 했다. 냉장고조차 없는 박한 살림이었다.

소년 이재명은 국민학교(오늘날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공장에 취업해야 했다. 가끔은 아버지의 청소 일을 도왔다. 쓰레기가 실린 리어카를 밀며 힘을 보태곤 했다. 아침 시간이면 교복 입은 학생들의 시선을 느꼈다. 그 시선을 이재명은 성남시장이 되어서도, 유력 대선주자가 되어서도 잊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소년 이재명은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공장 프레스에 왼쪽 손목 관절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성장기 소년의 성장판은 망가졌고 장애를 입게 됐다. 소년 이재명은 당장의 고통보다도 앞으로의 생계를 더 걱정했다. 그는 끝없는 절망감을 느꼈다.

소년 이재명은 반지하 작은 집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고 했다. 이를 눈치 챈 약사가 수면제 대신 소화제를 줬다.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나름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소년 이재명은 무섭게 공부에 파고들었다. 상대원시장의 한 상인은 그런 이재명을 기억했다. 그는 “그 가족 모두 순했는데, 걔만은 참 독했다”고 했다.

소년 이재명은 검정고시를 본 후 대학생 이재명이 됐다. 1986년에는 사법시험(28회)에 합격했다. 1989년 사법연수원(18기) 수료 후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사법연수원 성적은 판검사 임용이 가능한 정도였지만 그는 다시 시장으로 돌아왔다.

금광시장의 변호사·시장 이재명

인권변호사가 된 이재명은 성남을 떠나지 않았다. 상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밥을 먹었다. 금광시장 대박식당 김현희 사장(63)은 가난한 인권변호사 이재명을 ‘소탈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변호사 이재명은 “밥 안 차려주고 어디 가냐”라는 농담을 건네거나 ‘작은 접시’를 들고 와서 반찬을 더 달라고 졸랐다.

김 사장도 그가 ‘돈 못버는 변호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오면 밥값을 조금씩 깎아줬다. 자연스럽게 ‘법원 무리’들에게도 할인을 해주게 됐다. 이를 알게 된 이재명은 “그러지 말라”며 제값을 냈다.

변호사 이재명은 성남시장이 되어서도 대박식당 김 사장을 챙겼다. 시장 당선 후 그를 초대해 다과를 대접했다. 빼빼로데이에는 초콜릿을 보내줬다. 김 사장은 “다 녹아서 왔다”면서도 “참 고마웠다”고 했다.

상대원시장에도 그의 발자취는 있었다. 그곳에서 만두집을 운영하는 김조현 사장(67)은 성남시장 시절 이재명을 기억했다. 상인대학과 대학원을 세워 소상공인들도 공부할 수 있게 해줬고 30억원을 들여 시장에 지붕을 설치해 햇볕을 가려주고 빗물을 막아줬다고 전했다.

상대원시장 현재 모습. (성가현 이데일리 수습기자)
그곳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던 한 상인은 하천 주변 개고기 시장 얘기를 풀었다. 그는 시장 이재명이 나서 이들을 철거했다고 했다. 위생이 우려되고 미관이 안 좋다는 민원이 계속됐던 곳이었다. 수십년 토박이 상인들이 있던 곳이라서 감히 건들지 못하던 곳이기도 했다. 그곳 철거 얘기를 하며 그는 “대통령이 되어도 잘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시장 이재명은 소상공인 지원 아이디어도 시장 상인에게서 얻었다. 그의 대표 브랜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얘기다. 어느 날 상인들이 찾아와 전통시장 상인들과 소상공인 전용 지역상품권 아이디어를 냈다. 곰곰이 듣던 이재명은 지역 경제에는 그 제안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겼고 실행에 옮겼다. 지금은 대선후보 이재명의 대표 정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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