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일 넘게 이어진 비상계엄·탄핵정국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민생경제가 얼어붙은 데다 미국의 관세 폭탄이 현실화하며 위기가 심화할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전문가들은 대선까지 남은 두 달간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수장으로 한 지금의 ‘경제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정부와의 관세협상, 추가경정예산 편성 및 집행 등으로 대내외 경제위기 관리와 대응에 총력을 펴야 한다는 주문이다.
◇ 美통상전, 촌각 다퉈…추경도 서둘러야
윤 대통령 파면은 한국경제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 기관과 투자자들이 가장 꺼리는 게 정치적 불확실성”이라며 “민주주의 체제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불확실성이 사라졌고, 이는 대외신인도 면에서 플러스 요인”이라고 짚었다.
탄핵정국 종식으로 한국경제의 위기 돌파 책무는 차기 정부의 몫으로 넘어가게 됐다. 그러나 위기상황이 엄중한 만큼, 당장 새 정부 출범까지 두달간의 과도기를 허비해선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특히 현 경제팀의 최우선 과제로는 25%에 달하는 미국의 상호관세율 인하를 위한 협상, 피해 최소화를 위한 업종별 지원이 꼽힌다. 정부는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에 급파하는 등 오는 9일 상호관세 부과 전까지 대미협상을 지속하겠단 방침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협상의 여지를 남겨놨다”며 “경제 관료들이 국회와의 협업을 통해 특별협상팀을 꾸리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내적으로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시급한 과제다. 최상목 부총리는 10조원 규모의 ‘필수 추경’ 편성 방침을 이미 밝힌 상황이다. 여기엔 무역금융, 수출 바우처 추가 공급, 핵심 품목 공급망 안정 등 미국발 통상 리스크 대응을 위한 사업 예산을 반영할 계획이다. 또한 최악의 피해를 낸 산불피해 지원 등 재난대응, 인공지능(AI), 민생지원 등에 재원을 쏟겠단 구상이다.
하지만 아직 정부는 추경 취지에 관한 ‘여야 동의’를 기다리는 중이다. 구체적인 추경안도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최상목 부총리는 ‘추경의 목적은 경기진작용이 아니다’고 선을 긋고 있어, 민생지원 추경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야당과 마찰을 빚으며 추경 논의가 다시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양준모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적기를 놓쳤다, 서둘러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에 대응하고 경기를 활성화하려면 적은 금액의 추경이라도 빨리 처리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양 교수는 “정부의 신속집행으로 하반기엔 예산이 모자라기 때문에 어차피 대선 이후에 추경을 다시 해야 할 상황이 올 것”이라며 “2차 추경을 감안하면 더욱 서둘러 국회의 협조를 구해 추경 편성하는 게 맞다”고 했다.
이외에도 고공행진 중인 물가 관리, 토지거래허가제 재지정에 따른 부동산시장 변동성 관리 등이 현 경제팀의 과제로 제시됐다. 최상목 부총리는 이날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소집, 체감물가 안정책 추진과 부동산시장 모니터링 강화 의지를 직접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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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최상목 체제에 대한 흔들기가 계속돼선 안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최 부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표결에 부치지 않았다.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마은혁 헙법재판관 후보자 미임명 등을 이유로 들어 탄핵하겠다고 별러왔지만, 탄핵안은 일단 법제사법위원회로 회부했다. 법사위 회부 시엔 탄핵안이 폐기되지 않고 보존돼 ‘살아있는 카드’로 남는다.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는 “12·3비상계엄 전부터 경제가 어려웠고 대외여건이 좋지 않았음에도 정치권은 경제팀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도와주지 않았다”며 “최 부총리와 기재부가 중심을 잡고 경제에 매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경제팀 역시 비상 시국이란 특수성을 고려해 국회와의 공조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냉정히 말하면 ‘두달짜리 경제팀’으로 한계가 있다”며 “여야정 비상거국 경제협의체를 구성해 최 부총리와 여야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정책의 우선순위, 구체적인 내용을 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