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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주최하는 ‘제10회 서울 국제경쟁 포럼’에 참석차 방한한 프레데릭 제니(77·사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쟁위원회 의장은 12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최근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와 관련해 이같이 조언했다.
◇“양기관 중복 조사 방지하는 의지 분명해야”
공정위는 38년만에 공정거래법을 전면 개편하면서 중요한 담합사건의 경우 공정위가 고발을 해야만 검찰이 기소할 수 있는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기로 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위법성이 중대하고 소비자 피해가 큰 가격담합·입찰담합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검찰이 먼저 수사를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자칫 검찰과 공정위가 경쟁적으로 수사와 조사에 나설 경우 기업활동과 시장의 자율성 위축 등의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리니언시의 경우 예측가능성 확보가 핵심인데 검찰과 공정위가 리니언시 정보를 공유하다 경쟁적으로 조사 수사에 나서면 불확실성이 커져 리니언시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제니 의장은 검찰과 공정위의 긴밀한 협조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라마다 검찰의 위상에 따라 협조 방식이 달라질 것 같다”고 전제한 뒤 “(대등한 위치에서)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조사 우선 순위를 조정하면서 법집행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유럽의 경우 EU경쟁위원회와 각국 경쟁당국이 조사범위에 대해 상호간 조정하면서 중복 조사 우려를 줄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정위와 법무부는 리니언시가 접수된 ‘주요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우선적으로 수사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하지만 주요사건에 대한 기준이 명확치 않은데다 형사처벌 면책에 대해서도 검찰은 공정위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기로 했지만 공정위와 검찰 판단이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중복 조사, 수사를 방지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 위반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형사, 민사, 행정처분의 적절한 조합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어떤 제제가 보다 효과적인지는 각 국가의 법체계에 따라 다르다”면서도 “형사처벌은 강력한 처벌 효과는 있지만 입증이 쉽지 않고, 행정처벌은 상대적으로 입증은 수월하지만 강력하지 않다는 점에서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적절한 조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공정거래법에 지나치게 형벌 조항이 담겨있다며 개선을 주문했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개편안에 기업결합(M&A)과 관련한 형벌조항은 삭제하기로 했지만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에 대해서는 그대로 남겼다. 제니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은 예리한 경제적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위법여부가 명확한)형벌로 제재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공정위가 사인의 금지청구권, 집단소송 등 민사적 구제수단을 강화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행정제재가 충분한 법위반 억제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필요한 방식”이라면서도 “다만 기업입장에서는 비용이 올라가는 측면이 있다”며 제도 설계를 잘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정위, 정치적 이용 안돼..독립성 확보 중요”
제니 의장은 경쟁당국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지 않도록 독립성을 확보하는데 보다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박근혜 정부 시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때 판단을 번복하는 등 독립성 확보에 치명타를 입었다.
그는 “한국에는 규제나 법이 반경쟁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국무회의에 참가하는 위원장이 상당한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면서 “(국무회의 참가로) 다른 부처의 반경쟁적 규제를 철폐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긴 하지만, (정치적 목적에 휘말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법을 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원회 구성원에 대한 임기보장을 비롯해 사무처(검찰격)와 위원회(법원격)간 ‘파이어월’이 확실하게 구축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글로벌 경쟁당국이 각국의 이해에 따라 경쟁법을 집행한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EU가 구글, 애플 등 미국 IT기업에 대해 ‘칼’을 꺼내드는 등 경쟁법 집행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제니 의장은 “유럽의 경우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남용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시각이 강한 반면 미국의 경우 지나친 개입을 하면 경쟁을 저해하기때문에 위법 성격이 강한 카르텔 부문에 대해서 집중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면서 “문화, 역사에 따른 법 집행 방식의 차이일뿐,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제니 의장은…
수십년째 OECD 경쟁위원장을 지내면서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경쟁정책작업반 의장(1997)과 프랑스 대법원 판사(2004), 영국 공정거래청 비상임위원(2007) 등을 역임한 세계 경쟁정책 분야에서 손꼽히는 저명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