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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 100년을 바라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있는 미국 뉴욕 맨해튼이나, 1960년대 지어진 빌딩들이 즐비한 일본 도쿄는 한국 주요 업무지구보다 평균 연식이 훨씬 오래됐다. 그럼에도 이들 도시에서는 노후 오피스의 ‘공실 공포’나 대규모 이탈 현상이 서울만큼 대두되지 않는다. 해외 주요 도시와 서울 오피스 시장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
7일 이데일리가 건축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서울 1세대 오피스들이 지닌 구조적 한계가 건물 노후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1970~1990년대 폭발적인 고도성장기에 지어진 도심·여의도업무지구의 구축 빌딩들은 제한된 높이와 규제 속에 임대 수익 등 경제성을 우선으로 설계됐다. 이것이 글로벌화 속 현대 임차인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100년 전 뉴욕에 지어진 초고층 빌딩과 상대적으로 최근 지어진 국내 오피스 간에 건축공학적으로 유의미한 기술적 격차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다만 맨해튼의 건물주들은 외관과 골조는 보존하되 임대수익을 방어하기 위해 내부 엘리베이터나 로비, 편의시설을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뜯어고친다.
반면 한국의 경우 단기적인 임대수익이나 빌딩의 가치 상승에 따른 차익 실현을 우선하기 때문에 자본 지출을 통해 건물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에 상대적으로 인색하다는 평가다.
즉, 건물의 생애주기를 관리하는 제도적 환경과 시장의 인식이 결국 국내 오피스타운의 노후화를 앞당겼다는 진단이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한국의 경우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역시 철저히 ‘경제적 수익 추구’를 목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용적률이나 용도 제한 같은 핵심 규제가 수시로 변하다 보니 건물주들 역시 장기적인 투자를 망설이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러는 사이 최신 IT 인프라와 쾌적한 어메니티를 갖춘 신축 대형 오피스는 속속 공급돼 임차 기업들을 유혹하고 있다. 윤지해 부동산114 리서치랩장은 “기업들이 임대료가 비싸도 신축으로만 몰리면서 낡고 오래된 구축은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며 “구축 오피스의 공실률이 높아지는 기형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노후 오피스 소유주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가치를 끌어올리려면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해야 하지만, 급등한 공사비와 고금리가 발목을 잡는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새 단장을 하더라도 임대료 상승분으로 투자비를 온전히 회수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방치는 곧 도태를 의미한다고 경고한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는 보고서를 통해 “친환경 요건을 갖추지 못한 노후 빌딩이 저평가되는 ‘브라운 디스카운트’ 국면에 진입했다”며 “정부의 환경 규제가 강화될 경우 리모델링 비용이 자산 가치를 뛰어 넘어 거래조차 불가능해지는 ‘좌초 자산’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노후 건물이 지어졌을 당시에는 없던 개념이던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중요해지면서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그린 리모델링’이 필수 과제로 떠올랐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에 따라 2050년까지 국내 노후 건축물 그린 리모델링 시장 규모가 최대 2781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소수지만 막대한 비용을 이겨내고 리모델링을 통해 가치 상승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1970년에 준공된 국내 1세대 마천루 ‘삼일빌딩’은 준공 50년차를 맞아 대대적인 내·외관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그 결과 SK네트웍스 등 우량 대기업들을 유치하며 공실을 해소했고, 매각 과정에서 건물 가치가 3배 가까이 뛰는 성과를 거뒀다.
한편 노후 오피스 방치로 인한 상권 침체와 도심 활력 저하를 막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는 도심업무지구 노후 빌딩 재건축 시 1층에 개방형 녹지를 조성하면 용적률을 상향해 주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추진 중이며, 여의도와 강남 역시 낡은 빌딩의 통합 개발을 유도하는 맞춤형 건축 규제 완화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오피스는 민간의 영역인 만큼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개입은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서울시 서울총괄건축가)는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과도하게 장려하면 오히려 공급 과잉이 올 수도 있는 만큼 장기적인 도시계획에 맞춰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현재 노후 오피스 타운이 겪고 있는 딜레마의 원인은 개별 건물의 낡음이 아니라 일관성 없는 도시계획에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가까운 일본의 도쿄 역시 수십 년을 내다보는 확고한 마스터 플랜 아래 블록 단위의 재생과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반면, 서울은 장기적인 비전 없이 단기적인 규제 변화에만 의존해온 것이 족쇄가 됐다.
안형준 교수는 “결국 작금의 노후 오피스 타운 문제는 장기간에 걸친 도시 마스터플랜이 부족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며 “오피스 슬럼화를 막고 도심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잦은 규제 변경을 멈추고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일관된 도시계획 아래, 민간이 예측 가능성을 가지고 자발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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