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영남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계엄과 탄핵 충격 속에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국민의힘에 믿음을 줄지, 더불어민주당과 개혁신당 등 새로운 세력에 마음을 줄지 고심하고 있다. 영남이 승부처가 되면서 각 당에서도 민심을 잡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부산 토박이로 택시기사로 일하는 백 모 씨(56)는 바닥 민심에 관해 “부산 표는 김문수(국민의힘 대선 후보)한테 많이 주더라도 당선은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이 될 걸로 본다”며 “어차피 ‘이놈도 도둑놈이고 저놈도 도둑놈인데 그냥 일 잘하는 사람 뽑아주자’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대구 건설업계에서 근무하는 50대 김종구 씨 또한 “(김문수·이재명) 둘 다 마음에 안 든다”며 “이재명은 도덕성이 엉망이고 김문수는 계엄을 옹호하지 않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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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층을 중심으론 김 후보와 국민의힘에 다시 기회를 줘야 한다는 여론이 여전했다.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만난 50대 여성은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이 청렴하고 그분이 해왔던 일이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김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대구 경북대에서 만난 69세 주부 유 모 씨도 “거짓말로 공약을 막 뿌리는 대신 정치에서 거짓말을 안 한다는 걸 바탕으로 깔고 있는 것 같다”며 김 후보를 지지했다.
다만 김 후보 지지자들도 계엄과 후보 교체 사태 등에 아쉬움을 털어놨다. 부산 토박이라는 80대 강 모 씨는 “김문수가 ‘적당하이’ 좋다”면서도 “한덕수(전 국무총리)가 나오면 됐을 텐데 (후보가) 안 돼서 아쉽다”고 했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윤석열 대통령은 가만히 있는 게 좋다. 발언을 하는 게 중도층에 좋지 않다”고 했다. 보수 유권자들의 이 같은 인식 때문에 후보 교체 후폭풍이나 윤 전 대통령의 언행·재판 추이 등에 따라 대선에서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이들이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투표를 단념했다는 유권자도 있었다. 김 후보가 이들 마음을 얼마나 돌릴 수 있을지도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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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이번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나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유권자도 있었다.
부산 서면에서 만난 최민정(51) 씨는 중증 장애인 자녀를 뒀다며 “민주당이 돼야 (장애인) 시설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재명이 복지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위한 정책을 잘 편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구 수성구에 사는 권 모 씨(78)는 “이재명이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며 “대구가 보수라고 해도 이재명도 경북(안동) 사람”이라고 했다. 부산에 사는 30대 이 모 씨도 “12·3 사건과 관련해서 이미 민심이 민주당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황이고 단일화 과정에서도 경선을 뒤집으려는 국민의힘의 태도·행실에 뒤돌아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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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민심에 각당도 영남권 선거 구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날 일제히 대구·경북 지역을 방문, 유세 경쟁을 벌였던 이재명·김문수·이준석 후보는 이날은 나란히 부산·울산·경남을 찾았다. 미디어리서치가 뉴스핌 의뢰로 12~13일 무선 RDD(무작위 전화 걸기) 활용 ARS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대구·경북 지역에선 김문수(52.6%), 이재명(39.2%), 이준석(1.9%) 후보 순으로 지지율이 높았다.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선 이재명 후보가 42.6%,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가 각각 40.7%, 9.4% 지지율을 받았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박재욱 신라대 교수는 “부산의 경우 계엄 이후 국민의힘 지지 일부가 민주당으로 옮겨갔다”면서도 “아직은 유동적이다. 공약의 실현 가능성, 후보의 개인 이미지 등을 보고 유권자가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