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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일대는 전날 탄핵 찬반집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안국역 6번 출구를 나선 출근길 직장인들은 헌법재판소 앞 사거리 차로의 가드레일이 훼손된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100m 넘게 이어진 가드레일에는 ‘윤석열을 파면하라’, ‘탄핵 기각’이라고 적힌 리본 수십 개가 매듭지어져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 시민들은 혼란과 긴장감이 역력한 모습을 보였다. 인사동 쌈지길의 한 카페에서 일하는 유하영(29)씨는 “어제부터 인사동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경찰이 전부 막아서 겁먹었다”며 “내일은 우리도 카페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가게 앞에 버려진 집회 쓰레기를 치우던 크리스틴 박씨는 “외국인들이 어제도 와서 무슨 일인지 물어봤다”며 “집회도 깨끗이 해야 하고, 경찰도 모범을 보이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보수단체와 진보단체 등 각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의 집회 장소 분리 조치에 따라 각자의 장소에서 집회를 이어갔다. 보수단체와 진보단체는 각각 광화문 동십자각과 안국역 수운회관 앞에 자리 잡고 밤샘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경찰의 ‘완충지대’ 조성으로 양측 간 충돌은 없었지만 발언의 수위는 상당히 높았다. 탄핵 반대 집회의 한 연사는 “탄핵 기각 이 끝이 아니라 이 나라를 청소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경찰은 선고 직후 시위대의 과격한 행동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는데 이미 지난달 통계만 봐도 집회 현장은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헌재와 광화문 일대 소방 신고는 총 96건으로 △쓰러짐 32건 △낙상·골절 17건 △폭행·다툼 17건 △인파 밀집에 따른 사고 우려 16건 등이었다. 지난 한 달간 119 신고가 가장 많이 접수된 날은 탄핵 찬반 측이 총집결해 집회를 벌인 삼일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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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양측엔 더 많은 시민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탄핵 찬성 측이 자리 잡은 동십자각엔 ‘윤석열 파면’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든 이들이 쌀쌀한 저녁 날씨를 고려한 듯 두꺼운 겉옷을 입고 모여들었다. 경기도에서 왔다는 50대 이민정씨는 “8대0으로 파면이 되는 것을 응원하기 위해 왔다”며 “오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힘을 낼 것”이라고 웃음을 보였다.
수운회관 앞에 자리 잡은 탄핵 반대 측에도 퇴근 시간이 되자 직장인부터 자영업자까지 다양한 이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탄핵 각하’가 쓰인 손팻말과 태극기·성조기를 들고 헌재에 탄핵 각하 또는 기각을 요구했다. 반차를 내고 이곳에 왔다는 김모(29)씨는 “내일 헌재에서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탄핵심판 선고 당일인 4일 자정부터 전국에 가장 높은 단계의 비상근무 체계인 갑호비상을 내리고 경력을 100% 동원할 예정이다. 경찰은 헌재 등 주요 시설이 몰려 있는 서울에 기동대 210개 부대, 1만 4000여명을 집중 배치한다. 이날 서울로 도착한 각 지방 경찰청 기동대 등 경력들은 차례로 헌재 인근 배치됐으며 헬멧 등 보호장구를 착용한 기동대원들은 당일을 대비해 훈련에 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경찰버스 등을 이용해 헌재 인근 150m까지 차단선을 설치, ‘진공상태’를 만들었다. 필요에 따라 차단선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안국역은 이날 오후 4시부터 무정차 통과를 시작했으며 선고 당일엔 역을 완전 폐쇄할 예정이다. 선고 당일 각 역장의 판단 하에 광화문역, 종로3가역, 한강진역 등 주요 역사도 무정차 통과할 가능성도 있다.
박현수 서울경찰청장 직무대리는 “경찰은 폭력과 손괴 등 묵과할 수 없는 불법 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현장에서 신속 검거하는 등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선고 당일 인파 운집이 예상되는 만큼 인파 관리와 질서 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선고일 전후 질서 유지를 위해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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