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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엘니뇨에 이란전 쇼크까지…아시아 '식량 위기'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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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훈 기자I 2026.10.15 15: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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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쌀 18%↓·인도 식품물가 6%로
비료값 38%↑…방글라 쌀 비축 4%뿐
아시아 9100만명 빈곤 위기…재원 부족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역대급 엘니뇨가 아시아를 덮치면서 식량 위기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이란 전쟁으로 에너지·비료값이 치솟은 상황에서 가뭄까지 겹쳐서다.

지난 8월 28일 인도네시아 서자바주 보고르의 한 마을에서 주민이 오랜 건기로 갈라진 논을 걸어가고 있다.(사진=AFP)
지난 8월 28일 인도네시아 서자바주 보고르의 한 마을에서 주민이 오랜 건기로 갈라진 논을 걸어가고 있다.(사진=AFP)
쌀 생산 18%↓·식품물가 급등…엘니뇨에 비료값까지

14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태국 크룽타이은행은 내년 중반까지 태국 쌀 생산량이 18% 줄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인도의 식품 물가 상승률은 지난 1월 2.1%에서 지난 8월 6%로 뛰었고, 스리랑카는 지난달 9%에 달했다.

이상기후인 엘니뇨와 비용 상승이 한꺼번에 덮친 결과다. 이번 엘니뇨는 지난 5월 시작돼 다음달 정점을 찍을 전망이다. 태평양 해수면 온도 이상치는 일일 기준으로 이미 역대 모든 엘니뇨의 정점을 넘어섰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이번 엘니뇨가 내년 2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이란 전쟁으로 연료·비료 공급까지 차질을 빚고 있다. 세계은행은 올해 비료 가격이 지난해보다 평균 38%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엘니뇨는 동태평양 상공의 바람이 바뀌면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대부분 지역을 덥고 건조하게 만드는 기후 현상이다.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 캄보디아의 한 호수에선 죽은 물고기 약 2톤이 떠올랐다. 지난달 인도네시아에선 호수 수위가 낮아지며 오랫동안 물에 잠겨 있던 마을 유적이 드러났다. 필리핀 당국은 수도 마닐라 주민들에게 곧 수돗물 공급이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연간 강수량의 70% 가까이를 차지하는 인도 몬순(우기) 강수량은 평년보다 약 13% 적어 10년 만에 가장 건조했다. 인도네시아는 11년 만에 최악의 산불 시즌을 겪고 있고, 필리핀은 7개 주가 가뭄에 빠졌다. 내년 초엔 필리핀 전역이 가뭄에 들 수 있다.

농사 피해는 이제 시작이다. 인도네시아는 주요 쌀 작물을 엘니뇨가 정점에 이르는 10~12월에 심는다. 비가 줄면서 저수지도 말라 관개 농지마저 안전하지 않다. 태국 정부는 중부 농민들에게 올해 2기작을 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더 큰 걱정은 공급이다. 태국은 비축량이 넉넉하지만 다른 나라는 기댈 곳이 적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의 쌀 비축량은 연간 소비량의 4%에도 못 미친다.

스리랑카·방글라데시 가장 취약…亞9100만명 빈곤 위기

이코노미스트가 아시아 신흥국 11곳을 대상으로 만든 ‘취약성 지수’에선 스리랑카·방글라데시·캄보디아가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 의존도와 곡물 비축량, 정부 부채, 복지망 등을 따진 결과다. 내전 중인 미얀마는 자료가 부족해 빠졌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1위였을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가장 양호했다. 인도에선 농민이, 필리핀과 방글라데시에선 소비자가 주로 피해를 볼 것으로 분석됐다.

피해는 식량에 그치지 않는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강물이 마르면 수력발전이 줄고 더위로 냉방 수요는 늘어 석탄 사용이 증가하는 등 에너지 충격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도네시아 산불 연기로 싱가포르의 대기질은 지난 12일 인도 델리보다 나쁜 세계 최악 수준을 기록했다.

경제적 피해도 막대할 수 있다. 1997년 엘니뇨는 이후 5년간 세계 경제에 약 6조달러(약 8055조원)의 손실을 입혔다. 유엔은 올해 식량·에너지 가격 충격이 가계에 고스란히 전가되면 전 세계에서 1억3200만명이 추가로 빈곤에 빠지고, 이 가운데 9100만명이 아시아에서 나올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 부채가 불어나는 상황이어서 이를 막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예보로 대비 가능하지만…선제 대응 재원은 5분의 1뿐

그나마 다행인 건 어느 정도 위기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보 기술이 발달해 과거보다 대비할 여지가 크다. 인도는 가뭄 지역 농민에게 콩류 재배 전환을 유도하고, 필리핀은 가뭄에 강한 종자를 나눠주고 있다. ADB 소속 로셴 페르난도는 정점이 오기 전에 긴급 신용한도와 재난보험 등으로 엘니뇨 대응 자금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수지 수위 등 예보가 정해진 기준을 넘으면 곧바로 현금 등을 지원하는 ‘선제 대응’도 효과적이다. 유엔은 여기에 1달러(약 1343원)를 쓰면 최대 7달러(약 9398원)의 손실과 사후 원조를 아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재원이 문제다. 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6월 22개국 880만명을 보호하기 위해 2억200만달러(약 2712억원) 모금에 나섰지만, 지금까지 모인 돈은 4000만달러(약 537억원)에 그친다.

100여년 전 유난히 강력했던 엘니뇨는 인도와 중국 등지에서 수천만명이 숨지는 대기근을 불렀다. 아무도 이를 예견하지 못했고 대처법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예보는 정부와 기부국이 행동에 옮길 때만 쓸모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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