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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앗아간 ‘창조자의 감각’…<붉은사막> 글로벌 흥행의 문화심리학”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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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기자I 2026.07.14 16:02:10

[기고]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유저 자유도 높인 오픈월드 게임
여러 맛 조합하는 한국의 식탁처럼
정해진 루트 없이 무한 가능성 열어
AI시대 결핍된 '저자성' 욕구 해소
출시 석달 만에 600만장 흥행 견인

출시 85일 만에 600만 장을 판매하며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펄어비스 <붉은사막>.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게임정책자율기구 이사)은 AI 시대 더욱 중요해진 ‘저자성(著者性)’과 K게임의 경쟁력을 문화심리학의 시각으로 짚어봤다.[편집자주]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게임정책자율기구 이사] 몇 줄의 프롬프트로 누구나 어렵지 않게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AI 시대가 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나무랄 데 없는 결과가 온전히 ‘내 것’이라는 감각은 약해져만 간다. 결과가 훌륭할수록 오히려 내 몫이 어디까지인지 묻게 된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편리함을 만들지만, 동시에 새로운 결핍도 만든다. 그 결핍의 본질은 창조자의 감각, 즉 저자성(著者性, Authorship)에 있다.

우리는 더 많은 결과물을 갖게 되었지만, 그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은 예전만큼 선명하지 않다. 더 많은 답을 얻지만, 내가 직접 발견했다는 기쁨은 줄어든다. 더 많은 선택지를 받지만, 내가 세계를 바꾸고 있다는 감각은 희미해진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그 감각 말이다.

기술사회가 매끄러워질수록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조금 더 거칠고, 불확실하고, 직접 부딪힐 수 있는 세계를 찾는다. 결핍은 늘 자신을 채워줄 대상을 찾아 나선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고, 배고픈 사람이 밥을 찾는 이치다.

오픈월드 게임의 본질은 넓은 지도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넓어진 행위 자유도다. 어디로 갈지, 무엇부터 할지, 어떤 방식으로 실패하고 다시 시도할지를 유저가 정한다. 좋은 오픈월드는 완성된 답 대신 반응하는 세계를 제공한다. “당신이 움직이면 세계는 당신의 손끝에 따라 조응한다.” 이때 유저는 게임패드를 손에 쥔 창시자가 된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게임정책자율기구 이사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게임정책자율기구 이사
최근 <붉은사막>의 세계적 열풍은 이런 시대적 욕구와 맞닿아 있다. 출시 첫날 200만 장, 83일 만에 600만 장을 돌파했고,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 주요국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와 스팀 글로벌 판매 1위에 올랐다.

글로벌 흥행과 커뮤니티에서 보이는 유저들의 열광적 반응 뒤에는 더 깊은 욕구가 자리잡고 있다. 저자성에 목마른 현대인의 욕구 말이다. 사람들은 현실과 AI 환경에서 점점 희미해진 창조자의 감각을 게임 안에서 다시 만난다. 내가 움직이면 세계가 반응한다는 감각,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감각,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감각, 그리고 그 과정에 나만의 흔적이 남는다는 감각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일명, 와우), GTA, 젤다의 전설과 같은 오픈월드 게임계의 블록버스터들도 저자성을 무기로 한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붉은사막>이 돋보이는 이유는 그 차별성에 있다. 나는 이 차별성을 크게 두 가지로 파악한다.

첫 번째는 <붉은사막>이 저자성의 욕구를 한국적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이다. 여기서 한국적이라는 말은 전통 소재나 시각적 장식만을 뜻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형식이다. 무엇을 어떻게 배열하고, 상대를 어떻게 맞이하며,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게 하는가에도 문화는 스며 있다.

한국의 식탁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모든 음식이 순서대로 나오는 코스 요리와 달리, 한국의 상차림은 여러 맛과 조합을 한 공간에 펼쳐놓는다. 처음 마주한 사람은 당혹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곧 깨닫게 된다. 그것은 혼란이 아니라 환대다. 순서를 대신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리듬으로 들어올 여지를 주는 방식이다. <붉은사막>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능성을 펼쳐놓고, 어디서부터 들어올지는 유저에게 맡긴다.

또한 유저들의 문제 제기와 요구에 신속한 업데이트로 반응했다. 이른바 ‘빨리빨리’ 문화도 여기서는 조급함이 아니라, 상대의 불편을 오래 방치하지 않으려는 환대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AI가 앗아간 ‘창조자의 감각’…  글로벌 흥행의 문화심리학”
두 번째는 그 형식을 담은 자체 엔진, 블랙스페이스 엔진(BlackSpace Engine)이라는 그릇이다. 음식도 무엇에 담기느냐에 따라 맛과 분위기가 달라진다. 된장찌개를 뚝배기가 아니라 서양식 수프 볼에 담아낸다면 어떨까. 내용물은 같을지 몰라도,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온기, 숟가락을 넣기 전의 기대, 식탁 위에서 느껴지는 정서의 밀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게임 세계도 어떤 기술적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체험이 달라진다. 어떤 반응은 빠르게, 어떤 장면은 묵직하게, 어떤 가능성은 예상 밖으로 열리게 만드는 섬세한 제작 과정이 필요하다. <붉은사막>은 한국적 콘텐츠 제작 방식에 맞는 기술적 그릇을 만들어낸 셈이다.

이런 한국적 형식과 기술적 그릇의 결합은 K컬처의 다음 단계를 보여준다. K팝이 함께 움직이는 몸의 감각을, K드라마가 한국적 관계와 감정의 서사를 전했다면, K게임은 세계인이 그 안에 들어가 살아보는 방식이 되고 있다.

<붉은사막>은 잘 만든 게임을 넘어, AI 시대 인간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적 장면이 되었다. 그것은 기술사회 속 자기실현의 실험이며, 가능성의 감각을 회복하려는 세계인의 욕구에 대한 한국적 응답이다. 이것은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하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중앙대 문화사회심리학 박사.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 이사, 게임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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