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5.31% 수준까지 오르며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물 국채금리 역시 4.728%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장기금리 상승은 미국의 재정 부담과 국채 공급 확대, 인플레이션 우려, 기업들의 차입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AI 투자 열풍’이 국채 금리 상승의 요인으로 지목됐다는 점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아마존·알파벳·메타·오라클 등 주요 빅테크는 AI 투자 확대를 위해 올해 7월 초까지 약 1940억달러의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이는 지난해보다 79%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빅테크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늘면서 미국 정부 국채와 경쟁 구도를 심화시켰고, 상대적으로 국채 수요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빅테크 기업의 회사채 발행은 공격적인 AI 투자 확대를 위한 ‘자금 확보’를 위한 수단인 만큼 국내 반도체 기업에는 호재로 읽을 수 있다. 미국 빅테크의 자본지출(CAPEX·케펙스) 확대는 엔비디아 등 AI 가속기 업체뿐 아니라 HBM(고대역폭메모리)과 고사양 D램을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을 뒷받침하는 핵심 수요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의 국채금리가 장기간 상승세를 유지할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면서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다. 이 경우 빅테크가 AI 인프라에 투입하는 자금의 비용이 지금보다 훨씬 상승하면서 케펙스 집행 속도가 늦춰지거나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백찬규 NH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 센터장은 “장기 시계열을 보면 미국채 10년물이 먼저 움직이고, 기준금리가 후행으로 따라 움직인다”면서 “기준금리 상승은 기업 자금조달 비용을 높이고 증시 유동성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한국 증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의존도가 높아 미국 금리 충격에 더욱 민감할 수 있다. AI 투자를 지속해온 빅테크 업체들이 금리 인상에 따른 비용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지출을 줄이게 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또 그 충격은 고스란히 국내 증시에 전해질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이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실적 충격파는 상당할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설비투자와 수요 사이클에 민감하다는 점에서 빅테크의 투자 계획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며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늦어지고 서버 및 AI 가속기 수요 증가세가 둔화하면 HBM을 비롯한 고부가 메모리의 주문 증가 속도도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미국 장기 국채 금리 상승’ 상황을 곧바로 ‘반도체 실적 악화’로 연결하기에는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는 11월 3일 중간 선거를 앞두고 소비 진작을 위해 오히려 경기 부양에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란과의 전쟁을 매듭지어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돼온 유가를 안정시키고,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One Big Beautiful Bill Act)등 감세 법안을 실행시켜 기업들의 현금 유동성 확보를 도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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