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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통령은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다. 쟁점은 지휘·감독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하느냐다. 공개된 자리냐 밀실이냐도 본질이 아니다. 공개적인 압박이라고 정당한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3일 국무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대통령은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에게 기업 담합 사건을 따져 물었다. 담합 규모가 6776억원인데 과징금은 491억원에 그쳤다. 왜 이렇게 적으냐고 했다. 감면 규정 때문이라는 답변에 당장 고치라고 주문했다. 이미 결정된 처분에 대한 제도 개선 요구였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어진 대화는 달랐다. 당시 최종 심의를 앞둔 밀가루·설탕 담합 사건이 거론됐다. 주 위원장이 “경종을 울리는 결과를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자 대통령은 말했다. “종을 울려서 놀라야 진짜 경종인데, 놀라지를 않더라”고 언급했다.
8일 뒤 공정위는 설탕 담합 사건을 심의했다. 다음 날 발표된 과징금은 4083억원. 당시 역대 두 번째로 큰 담합 과징금이었다. 담합이 중대했다면 무거운 제재가 정당하다. 그러나 심의를 앞둔 공정위원장이 대통령 앞에서 강한 제재를 약속했다는 장면은 그냥 넘기기 어렵다.
형사수사는 더 민감하다. 과징금은 재산권을 제한하는 행정제재다. 형사수사는 압수수색과 체포·구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가 한 사람의 자유를 빼앗을 수도 있는 권한이다. 헌법이 무죄추정과 적법절차를 강조하는 이유다.
수사기관은 범죄를 밝히는 곳이지만 혐의가 없다는 결론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특정 사건을 거론하며 엄단을 주문한다면 어떨까. 무혐의보다 성과를 의식할 수 있다. 수사가 잘못됐다는 사실은 나중에 밝혀질 수 있다. 그러나 그사이 무너진 명예와 일상은 누가 돌려줄 것인가.
권력은 명령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최고 권력자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조직은 움직인다. 때로는 명령보다 눈치가 빠르다. 증거보다 성과가 앞서고 혐의보다 결론이 앞서는 순간 수사는 진실을 밝히는 절차가 아니라 결론을 만들어내는 수단이 된다.
지난 20일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 처음 참석한 김지용 중수청장에게 성역 없이 수사력을 총동원해 엄단하라고 주문했다. 특정 사건을 지목하지 않은 원칙적인 당부였다. 그러나 그 주문이 특정 사건과 연결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정책적 당부와 사실상의 수사 지휘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장이 대통령과 정기적으로 마주 앉아 현안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구조에서는 개별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이 수사기관에 직접 전달될 기회도 늘어난다. 대통령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조직 전체에 사건 처리의 방향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공개된 회의라고 이런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수청장이 국무회의에 앉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 자리에서 진행 중인 개별 사건이 논의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이 특정 사건의 수사 방향이나 처리 결과를 가늠하는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여져서도 안 된다. 수사기관이 따라야 할 것은 대통령의 의중이 아니라 법과 증거다. 권력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은 어쩌면 자신이 내린 명령이 아닐지 모른다. 자신은 명령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은 명령으로 받아들이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