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이하 한국시간) 현재 이정후의 시즌 성적은 타율 0.301, OPS(출루율+장타율) 0.801이다. 최근 15경기에서 57타수 23안타, 타율 0.404를 기록하며 리그를 폭격하고 있다. 특히 최근 7경기 타율은 0.480에 이른다. 시즌 초반 0.143까지 떨어졌던 타율이 순식간에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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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최근 15경기 평균 타구 속도는 90.0마일(약 144.8km), 하드히트 비율은 44%에 이른다. 100마일(약 160.9km) 이상 타구도 크게 늘었다. 시즌 첫 13경기의 수치는 87.9마일(약 141.5km), 31.4%에 머물렀다. 시즌 초반과 지금의 이정후는 전혀 다른 선수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발사각 8도에서 32도 사이의 이상적인 타구를 뜻하는 스위트스팟 비율도 36.8%로 지난해 34.1%보다 개선됐다. 억지로 공을 띄우는 것이 아니라 낮고 강한 타구를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KBO리그 시절부터 이정후가 가장 잘하는 부분이었다.
기술적 변화도 있었다. 이정후가 부진을 면치 못했던 이유는 타격 포인트가 뒤로 밀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다리의 스탠스를 조금 더 넓혔다. 공을 더 오래 보고, 타격 포인트를 몸 가까이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빠른 공에 쫓기지 않고, 자신의 스윙 궤도 안으로 공을 끌고 들어와 강하게 때리는 방식이다. 이같은 기술적 수정이 적중했다는 분석이다.
현지 언론이 주목하는 흥미로운 대목은 ‘헬멧’이다. 이정후는 그간 스윙 때마다 헬멧이 벗겨지는 고질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MLB 타자들이 쓰는 헬멧은 ‘롤링스’사가 독점 공급한다. 선수들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보니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그런데 이 공식 헬멧이 이정후에게는 잘 맞지 않았다. 헬멧이 잘 벗겨져 시야를 가리는 일이 잦았다.
이정후는 고민 끝에 헬멧 문제를 해결했다. 내부 패딩 위치를 조정하면서 더이상 벗겨지지 않게 된 것. 사소한 불편함이 사라지자, 타격 리듬이 살아났다. 공교롭게도 이정후의 타격이 살아난 시점이 헬멧 패딩 조정 시점과 일치한다. 헬멧 문제와 타격 상승세가 정확히 인과관계로 연결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정후가 그전보다 더 편안하게 스윙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샌프란시스코 입장에서는 이정후의 부활은 너무나 반갑다. 팀은 13승 16패, 승률 0.448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5개 팀 중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팀 타율은 0.245로 30개 구단 중 12위지만 OPS는 0.654로 꼴찌에서 두 번째다. 개막 후 29경기에서 이미 6차례나 영봉패를 당했다. 볼넷(58개)도 리그 최하위다. 1위인 시카고 컵스(141개)의 3분의 1 수준이다. 출루도, 장타도 시원찮은 타선에서 이정후의 방망이는 거의 유일한 희망이다.
토니 바이텔로 샌프란시스코 감독도 이정후의 반등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 인터뷰에서 “리듬이 아주 좋다. 자신의 본래 모습에 충실하고 있다”며 “타석과 수비에서 팀에 에너지를 주고 있다.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폭제”라고 말했다. 아울러 “타구가 구장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다“면서 ”공격에서 꾸준한 불꽃 역할을 해줄 선수가 필요했는데, 이정후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정후 본인은 ‘적응’을 반등의 배경으로 꼽았다. 그는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미국 생활에 더 익숙해지면서 이제 나답게 플레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바이텔로 감독과 관계도 언급했다. 이정후는 “감독님은 내가 미국 문화 속에서 나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며 ”반대로 감독님도 한국식 방식, 존중의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정후가 밝힌대로 바이텔로 감독은 말로만 신뢰를 보인 것이 아니다. 그는 이정후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오프시즌 동안 주전 유격수 윌리 아다메스와 함께 직접 한국을 방문했다. 낯선 리그와 언어, 다른 훈련 방식에 적응해야 하는 아시아 선수를 배려하려는 의지가 뚜렷하다. 이정후가 “나답게 플레이한다”고 말한 배경에는 이런 신뢰 관계도 깔려 있다.
이정후는 지난 시즌 초반에도 좋은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상대팀은 곧바로 대응했다. 각 구단 전력분석팀은 타구 방향, 약한 코스, 구종별 대처, 스윙 궤도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갸결국 이정후는 극심한 등락을 거듭한 끝에 시즌을 타율 0.266, OPS 0.734로 마쳤다. 기대에 비하면 아쉬움이 남는 활약이었다.
올해는 상대가 이미 이정후를 알고 있었다. 타격 성향이나 약점이 이미 분석된 상태였다. 첫 13경기 타율 0.143은 그 결과였다. 하지만 이정후는 그냥 당하지 않았다. 분석당한 상태에서 변화를 통해 오히려 반격에 성공했다. 지금의 활약은 상대의 정밀 분석을 뚫고 이룬 것이라는 점에서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