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투어 개막 일주일 남았는데…‘민무늬 모자’ 쓰고 뛸 판

주미희 기자I 2025.01.24 07:00:00

임진희·안나린·김아림·이소미 등 계약 난관
LPGA 투어 안정적 성적 거뒀지만
국내 기업 ‘니즈’ 적고 홍보 효과 떨어진다 ‘인식’
한화큐셀 골프사업 접은 연쇄 효과도
국제 경쟁력 약화 요인…“해외 진출 독려해야”

[이데일리 스타in 주미희 기자] “LPGA 투어 개막전이 일주일밖에 안 남았는데 이렇게 많은 선수가 메인 후원사를 구하지 못했던 적이 없습니다.”

왼쪽부터 임진희, 안나린, 김아림, 이소미(사진=AP/뉴시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의 계약을 담당한 A 매니지먼트사 관계자가 한숨을 쉬며 이같이 말했다. 깊어가는 골프업계 불황에 선수 후원 시장도 쪼그라들면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지는 분위기다. LPGA 투어 후원 시장은 더 찬바람이 분다. 골프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투어 시장이 커지면서 오히려 해외 투어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니즈’가 적어지고 있다”며 “더 이상 LPGA 투어가 매력적인 홍보 마케팅 시장이 아니라는 기조가 확산됐다”고 입을 모았다.

◇골프 사업 접은 한화큐셀…美 후원 줄이는 기업들

23일 골프업계에 따르면 올해 L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 중 아직 메인 후원사를 구하지 못한 주요 선수는 임진희, 안나린, 김아림, 이소미 등이다. 지난해 메인 후원사 없이 활동했던 김세영은 현재 후원사를 협의 중이다.

이들은 지난해 LPGA 투어에서 성적도 좋았다. LPGA 투어 통산 12승을 거둔 김세영은 최근 주춤했지만, 지난해 부활을 예고했다. 한 시즌 성적을 포인트로 환산하는 CME 글로브 10위에 오르며 활약했다. 임진희는 시즌 막판까지 신인상 경쟁을 벌이며 신인 랭킹 2위를 기록했다. 김아림은 지난해 롯데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안나린과 이소미도 안정적인 성적을 내며 올해 시드를 확보했다.

기업들이 골프 사업을 접거나 해외 투어 지원을 축소하면서 LPGA 투어 선수들이 메인 후원사와 계약을 맺기 더 어려워졌다. 김아림, 지은희, 신지은 등 LPGA 투어 선수들의 메인 스폰서로 대형 골프단을 운영했던 한화큐셀은 올해부터 해외 투어 선수들의 후원을 중단키로 했다. 한화큐셀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메이저 대회 한화인 클래식을 개최하지 않고 KLPGA 투어 선수 후원도 올해까지만 진행하기로 하는 등 골프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분위기다.

임진희를 후원하던 안강건설은 경제 불안 여파로 골프단을 해체했고, 안나린과 이소미의 메인 후원사였던 메디힐과 대방건설은 LPGA 투어 후원을 아예 접거나 계약 기간이 남은 선수만 존속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런 흐름은 경기 침체와 국내 투어 선호, LPGA 투어의 미미한 홍보 효과 등 때문이다. 경기 불황 때문에 기업들은 홍보 효과가 확실한 1~2명에 영입을 올인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LPGA 투어에 진출하는 윤이나가 필리핀 카지노 리조트 기업 솔레어와 최고 수준의 계약을 맺었고, 메디힐이 국내 투어 스타 선수 박현경, 이예원, 배소현과 모두 계약하는 광폭 영입을 벌였지만, 이는 일부에 불과하다. LPGA 투어에선 스타 선수들도 올해 깎인 계약금에 사인해야 했다.

오랜 전통의 명문 골프단 한화큐셀이 골프 사업을 중단한 것도 기업들의 후원 전략에 영향을 미쳤다. 한 관계자는 “실제로 한 골프단은 선수 영입 등에 대해 재검토 지시가 내려오면서 비시즌 행보가 소극적이었다”고 귀띔했다.

◇해외 진출 활발해지고 도전 정신 높이 사야

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이 최전성기를 누리던 때는 2015~2019년이다. 2015년과 2017년, 2019년 우리 선수들은 전체 대회의 절반에 가까운 15승을 합작하며 여자골프 최강국의 위용을 뽐냈다. 3주에 한 번씩 한국 선수가 우승하는 꼴이었으며 중계 화면에 자주 노출됐다. 이후 우승 수가 점점 줄더니 지난해 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 우승은 3차례에 그쳤다. 시차도 맞지 않는 데다 화제성까지 떨어지니 홍보 효과가 적다는 인식이 커졌다. LPGA 투어 우승이 국위선양이라는 인식도 사라졌다.

국제 경쟁력이 약화한 것도 요인으로 풀이된다. LPGA 투어 후원이 다시 활성화하려면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10년 전엔 우리나라 선수들이 활발하게 LPGA 투어에 진출했지만, 지금은 한 해 2~3명씩 해외로 나가던 관행이 없어졌다”며 “해외 진출을 독려하고 경쟁력을 높여야 매력적인 선수를 많이 발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선수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후원사 관계자는 “스폰서에 대한 예우조차 갖추지 않는 등 프로 의식이 부족한 선수들이 있다”면서 “이런 태도는 후원을 지속하고 싶은 기업을 떠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다만 선수들의 도전 의식은 높이 사야 한다. LPGA 투어에서 뛰는 선수들은 1년에 약 3억원의 경비를 쓴다. 국내 투어 활동 경비의 2배다. 1년치 짐을 싸들고 매주 비행기를 타고 다음 대회장으로 날아가는 이동 경로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꿈을 위해 LPGA 투어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올해 윤이나를 시작으로 황유민, 방신실 등 KLPGA 투어의 ‘젊은 피’들이 연이어 LPGA 투어 도전을 선언하면서 후원 시장이 더 활발해질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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