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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지난 4년 사이클은 성공적이었다. 4년 전 러시아월드컵 직후 포르투갈 출신 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대표팀은 코칭스태프의 강력한 리더십과 대한축구협회의 지원 속에서 안정적인 항해를 이어왔다.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 축구 역사상 이 정도로 과정과 결과, 모두 성공적이었던 대표팀도 없었다.
지난 한국 축구 4년을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면 ‘철학’과 ‘신뢰’였다. 그전까지 한국 축구는 그저 열심히 뛰고 몸을 던지면 되는 줄 알았다. 그것이 한국 축구의 ‘투혼’ 또는 ‘정신력’으로 포장됐다.
벤투 감독은 자신의 축구 철학이 뚜렷한 감독이었다. 볼을 최대한 소유하고, 패스로 경기를 풀고, 능동적으로 압박할 것을 강조했다. 그전에 해왔던 한국 축구와는 달랐다. 당연히 비판도 쏟아졌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을 유지했다.
벤투 감독이 대표팀에서 원하는 축구를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신뢰’였다. 경기력이 안 좋을 때도 대표 선수들은 벤투 감독을 믿었다. 벤투 사단의 합리적이고 선진적인 운영에 만족해했다. ‘벤투 감독과 함께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축구적 기대가 쌓이면서 팀이 더욱 단단해졌다. 대표팀에서 항상 불거졌던 불협화음이나 시행착오도 보이지 않았다.
오랜 기간 쌓인 저력은 카타르월드컵 본선에서 빛을 발했다. 어쩔 수 없는 전력 차이는 착실한 준비와 굳건한 믿음으로 메웠다. 한국 축구 역사에 남을 기적의 순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하였던 카타르월드컵은 막을 내렸다. 지난 4년을 이끌었던 벤투 감독도 눈물의 작별인사와 함께 고국으로 떠났다. 한국 축구는 이제 다시 원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착실한 과정을 거친다면 좋은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을 벤투 감독이 보여줬다. 이같은 교훈을 앞으로 4년 뒤에도 잘 이어간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 핵심 수비수 김민재(나폴리)는 소속팀으로 돌아가기 전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사령탑을 믿어주고 오랜 기간 감독님이 원하는 축구를 입힐 수 있어야 한다. 그러는 중에 실패하더라도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국 축구에 필요한 숙제를 알려주는 짧은 한 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