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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늘 개봉한 ‘검은 수녀들’은 강력한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을 구하기 위해 금지된 의식에 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10년 전 개봉해 K오컬트의 상업적 흥행을 처음 이끈 영화 ‘검은 사제들’(2015)의 제작사 영화사 집이 새롭게 선보인 구마 오컬트물이다. ‘검은 사제들’의 스핀오프격 작품이기도 하다. ‘두근 두근 내 인생’(2014) 이후 11년 만에 돌아온 배우 송혜교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가장 먼저 주목받았다.
‘검은 수녀들’이 ‘검은 사제들’과 비교해 가장 눈에 띄는 차별성은 주인공들의 성별이 반전돼있다는 점이다. 앞서 ‘검은 사제들’은 두 신부(김윤석, 강동원)를 주축으로 악마인 12형상에 들린 소녀(박소담 분)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렸다. 반면 ‘검은 수녀들’은 두 사제 대신 유니아(송혜교 분), 미카엘라(전여빈 분) 두 수녀가 똑같이 12형상에 부마된 소년 희준(문우진 분)을 살리려 금지된 구마 의식에 뛰어든다.
‘검은 수녀들’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주인공을 여성으로 내세워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유리천장’과 ‘기울어진 운동장’ 담론을 건드린 것이다. 공감대의 범위를 확장하며 오컬트를 넘어 드라마 장르로서의 매력도 끌어올린다. 우리가 일상에서 조금씩 겪는 성차별과 직장 내 ‘유리천장’의 문제가 신성시되는 성직자 집단에도 뿌리 깊게 박혀있고, 생사가 달린 문제에도 자격과 명분을 운운하는 남성 주류 집단의 격식 주의가 답답함과 과몰입을 유발한다. 구마라는 의식 자체가 비주류의 영역인데, 구마에 필요한 서품을 받을 권한마저 갖지 못한 수녀들이 소년의 생명을 살리려는 피 땀 눈물의 여정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영적 능력을 지녔단 이유로 괴물 취급을 받던 두 수녀가 오로지 신념 하나로 서로의 불완전한 능력을 모아 ‘연대’의 위대한 에너지를 증명하는 과정이 극적이다. ‘검은 사제들’ 속 김범신 신부(김윤석 분) 최준호 부제의 사제(師弟) 케미와는 또 다른 느낌인 유니아, 미카엘라의 관계성도 매력적 관전포인트로 활약한다. 차갑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이며 신념 앞에 단호한 유니아의 가르침을 지켜보며 변화하는 미카엘라의 성장 과정 역시 인상적이다.
‘검은 사제들’과 비교해 주변 인물들의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 두 주인공과 주변인물 간의 다양한 관계성과 이들끼리 서로 대립과 조력을 거쳐 진정한 연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확장’의 미덕을 느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신앙 속 오컬트 재료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활약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검은 수녀들’의 주인공 유니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년을 살리고자 천주교 구마 의식에서 허락된 재료 말고도 필요한 모든 수단들을 총동원하는 과감함을 보인다. 한때 수녀로 활동했지만 신내림을 거역할 수 없어 무당이 된 조력자 효원(김국희 분), 효원의 신제자인 애동(신재휘 분)이 대표적이다. 천주교 구마 의식과 우리나라의 전통 신앙 굿을 ‘검은 수녀들’ 한 작품에서 체험하고 느낄 수 있다. 급기야 서양 점성술 도구인 타로카드까지 등장한다. 미카엘라가 영적 능력을 숨긴 채 괴로울 때 가끔씩 꺼내 봤던 낡은 타로카드가 구마 의식을 위한 실마리에 뜻밖의 단서로 활약하기도 한다. 오컬트 마니아들에겐 종합선물세트처럼 느껴질 작품이다.
나아가 오컬트의 존재를 부정하는 의학과 과학까지 결국 힘을 보탠다. 극 중 정신의학과 전문의인 바오로 신부(이진욱 분)는 초반부터 중반까지 내내 유니아와 대립각을 형성하고 수제자인 미카엘라를 압박하지만, 결정적 대목에선 그의 존재가 필요해지기도 한다. 바오로 신부에게 전수받은 미카엘라의 의학 지식이 희준의 상태를 살필 때도 유용하게 작용한다.
‘검은 사제들’ 세계관과의 연결성을 느낄 수 있는 반가운 설정들도 곳곳에 눈에 띈다. ‘검은 사제들’에서 12형상 봉인에 결정적 열쇠로 등장했던 아기 돼지가 ‘검은 수녀들’에도 잠깐 등장해 반가움과 귀여움을 유발한다. 주인공 유니아 수녀가 ‘검은 사제들’ 김범신 신부의 제자였다는 설정, 문제 해결 과정에서 김범신 신부와 서신을 주고받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검은 사제들’ 속 부마자였던 영신(박소담 분)의 흔적도 짧게 등장한다. 최준호 부제로 활약했던 배우 강동원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카메오로 활약하기도 한다.
‘검은 수녀들’은 24일 오늘 개봉해 전국 극장에서 상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