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나 정책 입안자들이 애용하는 것 중 발롱데세(ballon d'essai)라는 게 있다. 원래 기상 관측용 시험 기구를 뜻하는 용어이나 여론의 동향이나 주위의 반향을 살펴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관계 정보를 유출하거나, 특정 발언을 해 떠보는 기법이다. 여론 조작의 목적도 담겨 있다.
핌 베어벡 대표팀 감독이 자진 사퇴한 뒤 후임 올림픽 대표팀 감독 선임을 놓고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 발롱데세를 떠올리게 된다. 띄운 주체는 대한축구협회이고 풍선은 홍명보 대표팀 코치다. 유력한 차기 올림픽 대표팀 감독감으로서 말이다 .
홍명보 감독론이 제기된 과정은 전형적인 발롱데세다. 베어벡 감독이 일본과의 2007아시안컵 3,4위 전을 마친 뒤 자진 사퇴를 발표한 후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설이 나오기 시작 했다. 대표팀이 귀국하기 하루 전인 지난 달 29일 익명의 대한축구협회 고위 관계자의 입을 통해서였다. “베어벡 감독이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면 현재 대안은 홍명보 코치가 유력하다”는 것이었다 .
그리고 지난 달 30일 선수단과 함께 귀국한 베어벡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은 압신 고트비, 홍명보 코치 등이 잘해 주고 있어 기존 코칭스태프에 올림픽팀을 계속 맡기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고 하면서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이날 오후부터 축구협회에서는 ‘홍명보 당위론’까지 새어 나왔다. 오는 22일부터 시작하는 2008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을 헤쳐 나가기 위해선 그만큼 적합한 인물이 없다는 부연설명과 함께.
이후 축구협회를 통해 또 다른 후보로 거론되던 김호곤 협회 전무이사는 본인이 고사해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다. 이들 외에 여러 인물들의 하마평도 무성하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 굳히기에 들어가는 기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기술위원회가 끝난 뒤 발표된 “경력도 중요하지만 경험 ” “올림픽 대표팀에 대한 파악 정도” 등 감독 선임 기준들은 홍명보 코치를 염두에 둔 것으로까지 느껴질 정도다. 이러한 풍선 띄우기는 현재까지 여론이 썩 나쁘지 않아 더욱 힘을 얻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물론 홍명보 코치의 경력과 자질, 능력 등은 상당 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일련의 상황을 보면 씁쓸한 것 또한 사실이다. 투명한 과정과 원칙에 따르기보다 여론에 더 기대려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과연 엄선한 후보군을 두고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과 능력, 더 나아가 한국축구 발전을 위해 적합한 지를 고민하는 검증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 거려진다. 심지어 미리 방향을 정해놓고 여론의 추이를 살피면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카드로 구색을 맞추려는 느낌도 든다.
그렇기에 홍명보 감독론 또한 여론 무마용이 아닐까라는 우려가 생긴다. 아시안컵에서 대표팀 부진, 감독 사퇴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난국을 ‘홍명보’ 라는 이름값으로 적당히 덧칠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한국 축구에서 차지하는 홍명보 코치의 비중을 감안하면 그가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된다는 사실만으로 당장의 축구협회 책임론 등을 따돌릴 수 있는 게 현실 아닌 현실이다. 이미 홍명보 감독론이 부상하면서 축구협회와 기술위원회의 실책 등 정 작 짚고 넘어가야 할 여러 중요사안들이 묻혀 가고 있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
발롱데세가 애용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의도와 달리 반응이 좋지 않으면 없었던 일로 되돌리기 좋다는 것이다. 홍명보 카드 또한 여론의 추이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폐기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요즘 한국 축구는 지나치게 정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