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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인권을 위한 노트] 정치를 위한 스포츠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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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무 기자I 2019.04.03 10: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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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당명이 적힌 붉은 점퍼를 입고 지난 달 30일 오후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경남FC와 대구FC의 경기때 경기장 내 정치적 행위를 금지한 경기장 안으로까지 들어가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제공
[이데일리 스타in 스포츠팀] 스포츠는 정치적 중립에 대한 강박을 갖고 있다. 스포츠의 역사는 대부분 정치와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로마 공화정의 카이사르는 대중의 표를 얻기 위해 검투사 경기를 십분 활용했다. 그의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 황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는 과거에만 그치지 않는다. ‘근대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이 근대 올림픽을 구상한 이유는 보불전쟁의 패배에 따른 프랑스 민족의 재건 때문이었다. ‘독일 체조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리드리히 얀은 우생학에 대한 믿음을 근저로 독일인들의 체력을 향상하고자 고심한 인물이다. 럭비로 유명한 영국의 사립학교 ‘럭비스쿨’은 유산 계급과 노동자 계급을 ‘구별짓기’ 위해 스포츠맨쉽을 활용했다.

그 외에도 나치 체제 선전의 장이었던 1936년 베를린올림픽, ‘검은 9월단’의 테러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이 사망한 1972년 뮌헨올림픽 등 스포츠가 정치로 인해 얼룩진 무수한 사례가 존재한다.

서양만의 일일까. 한국 체육사 교과서의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화랑도’는 왕실과 귀족의 집결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치·군사적 집단이었다. 1895년 고종이 내린 교육입국조서에 담긴 ‘체덕지’도 요즘 말로 ‘웰빙’을 위한 게 아니라 백성의 체력을 길러 일제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반공주의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전 국민을 병영 체제로 동원해 신체 훈육을 실시했다. 전두환 정권은 88서울올림픽 준비를 이유로 판자촌 주민들을 강제로 내쫓았다. 한국에서 스포츠는 ‘국민’이 아니라 ‘국가’였다.

역사적 사례가 잘 보여주듯 ‘정치’와 ‘스포츠’를 따로 보는 이분법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더욱 정치는 스포츠를 경계한다. 아무리 스포츠가 정치와 맞물려 돌아간다 해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스포츠를 있는 그대로 즐기고 싶은 이상이 있다. 이는 국민을 대변한다는 정치인에게 상식이자 덕목이다. 이러한 면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행동은 스포츠에 대한 ‘무지’, 그리고 ‘무시’에서 기인한 것이다. 재보궐 선거를 위해 경기장 안에서 유세를 한다는 것은 국가권력에 종속됐던 스포츠의 무겁고 아픈 역사를 모르는 ‘무지’다. 경기를 지원하고 관리하는 직원의 제지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한 것은 스포츠를 ‘무시’한 행동이다.

그래도 굳이 정치적인 이유로 경기장에 들어가고 싶다면 다음의 인물들을 참고하면 좋겠다. 2016년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경기 시작 전 국가 제창을 거부한 미국 프로미식축구(NFL)의 ‘콜린 캐퍼닉’, 1968년 멕시코올림픽 시상식에서 흑인 인권을 위해 침묵으로 시위했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

물론 이들의 행동에 모두가 박수를 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한 비판의 시각만큼, 지지와 연대의 손길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의 행위는 정치의 종착점인 ‘인간’을 향해 있기 때문이었다.

△정재영 스포츠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스포츠가 인권에 기여하고, 인권이 스포츠에 스며든 세상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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