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진 캐아일체 열연…어벤져스급 앙상블과 팀워크
코미디·추리물·휴머니즘·스릴러 복합장르의 매력
층간소음부터 재건축·아동 안전 등 사회문제 조명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열쇠는 타인을 향한 관심, 그리고 따뜻한 오지랖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팍팍한 일상에도 ‘안거울’ 같은 오지라퍼가 더 많아지길 간절히 바라게 되는, 영화 ‘백수아파트’(감독 이루다)다.
 |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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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아파트’는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백수 거울(경수진 분)이 새벽 4시마다 아파트에 울려 퍼지는 층간 소음의 정체를 찾기 위해 이웃들을 조사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미스터리 코믹 추적극이다. 배우 겸 제작자 마동석이 제작에 참여해 개봉 전부터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루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2020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을 수상한 바 있다.
아파트 층간 소음, 이웃 간의 갈등 등 기존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활용돼온 소재이지만, ‘백수아파트’는 이를 현실의 다양한 사회 문제 및 여러 장르와 엮어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주인공 거울은 동네 신율동 주민들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오지라퍼 백수다. 거울은 동생 두온의 어린 아들, 딸과 함께 동네 신율동을 누비며 24시간 정의 구현에 열정을 쏟는다. 변호사인 동생 두온은 그런 누나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두온의 시선에선 주차 위반 딱지, 구청 민원 신고 등 누나가 동네의 삶의 질을 높이려 고군분투하는 모든 일들이 쓸데없는 오지랖처럼 보인다. 오지랖에 목숨 걸다 누나는 물론 자신의 어린 아들, 딸까지 해코지를 겪을까봐 노심초사한다. 그러다 폭발한 동생 두온이 그간의 가사 노동비 2억원을 한도로 둔 신용카드를 거울에게 쥐어주고 자신의 집에서 나가달라는 통보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거울은 한 달만 대충 살다 다시 두온의 집에 들어갈 속셈으로 재건축 철거 위기에 처해 다 쓰러져가는 ‘백세 아파트’ 501호에 입주한다. 501호로 이사한 첫날 거울은 새벽 4시 천장에서 들리는 의문의 소음에 잠이 깬다. ‘백수아파트’는 거울이 층간소음의 근원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코미디와 스릴러, 추적극, 휴머니즘 등 여러 장르와 엮어 풍성하고 다채롭게 풀어낸다.
층간소음범을 잡기 위한 거울의 무모한 오지랖은 시작은 외롭고 미미했지만, 아파트 거주민들을 만나 그들과 특별한 관계성을 맺으며 동네의 풍경을 서서히 변화시킨다. 여기저기 참견하며 아파트와 관련한 모든 정보에 빠삭한 동대표 지원(김주령 분)을 시작으로 실직 후 빚더미에 오른 동갑내기 회계사 경석(고규필 분), 거침없는 MZ 공시생 샛별(최유정 분), 백세아파트 거주민이자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용하다고 소문한 무학 보살(박정학 분), 백세아파트 경비(정희태 분), AMSR 유튜버 동오(배재명 분)까지. 층간소음법을 잡겠다며 온 아파트에 긁어 부스럼을 내는 거울의 열정에 이들은 처음에 불편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늘 미소를 잃지 않는 거울의 당당한 기개, 남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가짐에 이들도 서서히 감화되고, 결국은 거울과 한 팀이 돼 끈끈한 팀워크를 보여준다. ‘잃어버린 아파트 주민들의 수면과 삶의 질을 되찾는 것’. 거울과 아파트 주민들이 잠도 자지 않고 새벽에 보초를 서며 이 한 몸을 던지는 목적은 제3자가 언뜻 보기엔 사소해 보인다. 그럼에도 그 오지랖이 느리지만 확실히 아파트 주민들의 삶에 스며들고 그들에게 살아갈 용기를 불어넣는 과정과 결실은 창대하다.
‘백수아파트’는 이와 함께 주인공 거울이 모든 일에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오지라퍼가 될 수밖에 없던 아픈 사연도 녹여내 뭉클함을 안긴다. 거울의 안타까운 사연은 자칫 신파요소처럼 비춰질 수 있다. 다만 ‘백수아파트’는 극의 분위기나 감정선이 무거워질 순간 곧바로 코믹, 추리물의 장르로 국면을 전화하며 극의 리듬을 자유자재로 연주한다. 거울의 외로운 오지랖과 용기가 ‘백세아파트’ 주민들, 나아가 거울의 행보를 가장 이해하지 못했던 동생 두온(이지훈 분), 둘째 동생 세온(차우진 분)까지 감응시키며 확산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층간소음 범인의 정체를 찾아나가는 과정은 긴장감을 자아내는 추리물과 스릴러의 분위기를 자아내며 몰입도를 높인다. 그러다 거울이 뛰어난 관찰력과 임기응변으로 진범을 잡는 클라이맥스에선 짜릿한 쾌감과 반전을 느낄 수 있다. 영화의 톤은 대체로 가볍고 유쾌하지만, 극을 이루는 스토리와 메시지는 층간 소음을 비롯해 재건축, 아동 안전, 청년 자살 등 현실을 무겁게 짓누르는 사회문제들이 엮여 결코 가볍지 않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창대함과 함께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영화에 얽힌 문제와 갈등은 무겁지만 유쾌한 연출 터치, 개성만점 캐릭터, 울림 있는 메시지로 따뜻하게 마음을 데울 사랑스러운 영화다.
평소 예능 등에서 활약하며 ‘경반장’이란 수식어를 보유한 경수진은 ‘백수아파트’를 통해 제대로 된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주인공 거울과 200% 싱크로율을 빛낸 경수진의 ‘캐아일체’ 열연, 믿고 보는 배우들과 함께 완성한 어벤져스급 팀워크, 유쾌발랄 앙상블이 영화의 개성을 끌어올렸다. ‘백수아파트’로 스크린 데뷔한 최유정의 열연도 합격점이다.
한편 ‘백수아파트’는 오는 26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