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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에서 2연승으로 우승을 눈앞에 둔 현대캐피탈의 중심에는 세터 황승빈이 있다. 필립 블랑 감독 부임 후 팀의 주전 세터로 낙점받은 뒤 시즌 내내 안정적인 토스로 정규시즌 1위를 견인했다.
특히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빠르고 정확한 토스로 레오나드로 레이바(등록명 레오), 허수봉 등 공격수들의 기를 살려주고 있다. 현대캐피탈이 자랑하는 빠른 속공도 황승빈의 토스에서 위력을 더하고 있다.
사실 황승빈은 V리그의 대표적인 ‘저니맨’이다. 2014~15시즌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로 대한항공에 지명을 받은 뒤 남자부 총 7개 구단 중 5개 팀 유니폼을 입었다.
대한항공 시절에는 뛰어난 기량에도 국내 최고 세터 한선수의 그늘에 가려져 ‘넘버2’ 신세를 면치 못했다. 2020~21시즌을 끝으로 대한항공을 떠난 뒤에는 다른 팀에서 본격적으로 빛을 보는 듯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매 시즌 유니폼을 갈아입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2021~22시즌 삼성화재, 2022~23시즌 우리카드, 2023~24시즌 KB손해보험을 거쳐 지난해 9월 30일 1대2 트레이드로 현대캐피탈로 이적했다. 당시 현대캐피탈은 미들 블로커 차영석과 세터 이현승을 내주고 황승빈을 영입했다. 물론 가는 팀 마다 주전 세터를 맡았지만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기에는 너무 팀을 자주 옮겨다녔다.
그렇게 프로선수로서 10년이 지났고 드디어 황승빈이 빛을 보고 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이미 2승을 거둔 현대캐피탈이 남은 세 경기에서 1승만 추가하면 황승빈도 ‘우승팀 주전세터’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황승빈은 3일 천안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챔프전 2차전을 마친 뒤 “1, 2차전 모두 매 세트 힘들었고 박빙 승부를 했지만 승리로 장식할 수 있어서 한 단계 성장한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공교롭게도 챔프전 상대는 자신이 프로 데뷔 후 오랫도안 몸담았던 대한항공이다. 1차전 유광우, 2차전 한선수등 V리그를 대표하는 베테랑 세터들과 맞대결해 승리를 이끌어냈다. 물론 팀이 이긴 것이지만 황승빈이 명실상부 V리그 최고의 세터로 올라섰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황승빈은 그동안 여러 팀을 옮겨다닌 과정에 대해 “트레이드될 때마다 주전 세터로 뛰었다. 모든 팀들에서 내 역량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며 “자리를 잃어 팀을 떠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시절 선배이자 주전세터였던 한선수와 대결에 대해선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고 애써 말을 돌렸다. 그러면서 “아직 황승빈이 (유광우나 한선수에게)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모두 인정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솔직한 바람을 털어놓았다.
황승빈은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 당시 ‘챔프전 우승 마지막 포인트를 허수봉에게 올려주고 싶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그 말이 허수봉에 대한 강한 믿음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황승빈은 “억지로 (허)수봉이한테 만들어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감독님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매치 포인트에서 누가봐도 확률적으로 높다면 언제든 수봉이에게 자신있게 공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