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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째 도박 중독 환자를 치료해온 최삼욱 진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청소년 도박 중독의 심각성을 거듭 강조했다. 단순히 한 시절의 문제가 아니라 삶 전반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박 중독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지침서 ‘어쩌다 도박’의 공동저자이기도 한 최 원장은 스마트폰 등 온라인 환경이 만연해지면서 도박을 접하기 쉬운 환경이 됐고 이 때문에 중독의 시기와 진행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청소년들에 대한 주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내 손안에 도박…더 일찍, 빠르게 빠지는 도박 중독
최 원장이 도박 중독환자를 본격적으로 치료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다. 당시 많은 중년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 10대 환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게 최 원장의 설명이다. 온라인 도박이 생긴 후 모든 곳이 ‘강원랜드화’ 됐다고 했다. 도박 중독 환자들의 나이도 크게 낮아지고 중독의 속도 또한 빨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2000년대 초반에는 40대 환자도 젊은 편이었는데 요즘엔 도박 경험 연령이 10대로 낮아졌다”며 “과거엔 강원랜드 근처에 살지 않는 한 처음 도박을 접해서 중독될 때까지 10~20년이 걸렸는데 지금은 1년~2년 안에도 이 기간과 비슷할 만큼 중독의 진행속도가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병적 도박’과 ‘도박 및 내기 관련 문제’로 병원을 찾는 만 19세 미만 청소년은 267명으로 2020년(98)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특히 만 14세 이하 청소년은 같은 기간 동안 1명에서 24명으로 24배 늘었다. 여기에 중독 환자 대부분이 중독 사실을 숨기고 도박 중독의 경우 불법 도박에 빠진 사례가 많아서 실제 중독자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식·코인 중독으로 이어지는 도박중독…“학교·가정의 관심 필요”
문제는 중독시기가 빨라질수록 재발뿐 아니라 다른 중독에 노출될 위험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그의 저서엔 도박중독자들의 뇌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알코올중독과 동일하게 도박 관련 정보를 보여주면 뇌의 보상회로 부분이 과도하게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최 원장은 “청소년들은 이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발달하기 전이라 중독에 더 취약하다”며 “건강하지 않은 방향으로 뇌 발달이 이뤄지면 생활뿐 아니라 인간관계나 건강, 사회생활 전반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릴 때 모든 중독에 일찍 노출되면 다른 중독에 더 쉽게 노출된다”며 “어릴 때 도박을 끊었다가 대학생이 된 뒤 주식이나 코인 등 다른 행위중독에 빠져서 오는 경우가 잦다. 대부분 선물, 파생상품, 코인으로 다시 중독돼 온다”고 했다.
이 때문에 최 원장은 가정, 학교의 관심과 조기개입을 강조했다. 그는 “성인은 알아서 하겠지 하고 두는 경우가 많지만 학생들은 부모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고 조기에 증상을 발견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정 기복 △잦은 스마트폰 사용 △성적 저하 등 행동변화 △금전 및 교우 관계 이상과 같은 신호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예방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최 원장은 “병원은 나중 문제이고 발달학적 측면에서 성장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예방”이라며 “학교 단위에서 어릴 때부터 예방교육을 하고 고위험군을 선별해서 조기에 개입해야 한다. 이건 학교에서만 할 수는 없고 정부 차원에서 교육부, 복지부, 법무부 등 다른 기관과 협력하는 거버넌스를 갖춰야 한다”고 언급했다. 위험군을 단계별로 나눠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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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은 ‘90일’병이란 말이 있다. 평균적으로 도박을 멈춘 뒤 90일이 지난 안정기에 재발할 위험이 크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이다. 재발한 중독자는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도박을 끊기 더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미 도박에 중독된 청소년의 경우 도박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을 차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 원장은 “청소년들은 학교 안팎에서 친구들과 무리지으면서 또래 안에서 도박을 반복해서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치료가 어렵다”며 “그런 교우관계 안에 있는 친구들은 네트워크가 견고해서 90일을 못 견딘다”고 짚었다.
아울러 최 원장은 가족도 도박 예방 교육을 받아 학생과 신뢰관계를 쌓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가족이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주로 배신감과 분노이고 학생을 이해하지 못해서 야단친다”고 했다. 이어 “도박은 숨기는 병이고 이 과정에서 재발하기 때문에 비난하면 더 숨기게 된다”며 “공감적인 경청으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도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최 원장은 도박에 중독된 청소년에게 주위에 도움을 청하라고 말했다. 그는 “어른들은 도울 준비가 돼 있다”며 “조금만 마음을 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이나 국가기관이 있으니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고민을 털어놓으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