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송은 10년 전 갱년기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던 백수오 제품에 독성 우려가 있는 가짜 백수오(이엽우피소)가 혼입됐다는 소비자원 발표로 관련 기업 주가가 폭락하면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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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소비자원의 공표행위가 위법하다”면서도 “주주들이 주장한 손해와 공표행위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어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내츄럴엔도텍(168330)은 백수오 등 한약재 복합추출물을 생산하는 코스닥 상장회사다. 한국소비자원은 2015년 4월 21일 “시중 유통 중인 백수오 제품 상당수가 가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소비자원은 백수오 제품 32종 중 21종에서 이엽우피소가 검출됐고, 내추럴엔도텍이 공급한 가공 전 백수오 원료에서도 이엽우피소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백수오 수요가 증가하자 가격이 저렴한 가짜 백수오(이엽우피소)를 백수오로 둔갑시킨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 이후 내츄럴엔도텍 주가는 1주당 8만6600원에서 8550원까지 10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주주들은 허위사실 공표로 손해를 입었다며 2018년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엽우피소는 당시 식품 원료로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아 사용이 금지된 물질이었다고 판단했다. 소비자원이 이엽우피소의 인체 유해성과 관련한 연구 결과를 적시한 것이 과학적 합리성을 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또 “소비자원은 이엽우피소가 검출된 이상 소비자들에게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원고들은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은 이를 기각했다. 소비자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를 인용한 것은 독성이나 인체유해성에 관한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공표에 위법성이 있더라도 직접적 피해자는 회사이고, 주주들은 회사 자산가치 상실로 인한 주가 하락이라는 반사적 손실을 입은 것에 불과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고들의 상고를 기각했다. 다만 “원심의 판단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소비자원의 공표행위에 대해서 대법원은 ‘위법하다’고 봤다. 공표 당시 소비자원은 이엽우피소의 혼입량이나 혼입 경위를 확인하지 않았고, 회사가 원가 절감을 위해 의도적으로 대체했다고 단정할 객관적 자료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츄럴엔도텍의 건강기능식품에관한법률위반 등의 혐의에 관해 2015년 6월 수원지검도 “혼입비율이 평균 3% 정도로 경제적 동기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회사가 고의로 혼입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혐의없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은 “소비자원이 ‘업체들이 원가 절감을 위해 의도적으로 대체했다’는 취지로 공표해 회사 제품에 인체 유해 성분이 상당량 혼입됐음을 암시했다”며 “이는 백수오 제품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 신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판단된다”는 단정적 표현과 “가짜 백수오를 둔갑시켜” 등 자극적 표현을 사용한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대법원은 “공표가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히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객관적 타당한 확증과 근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주주들의 손해와 공표행위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부정했다. 불법행위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려면 위법행위와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이에 원고 패소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행정기관의 공표행위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대법원은 “행정상 공표는 실명공표 자체가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요청에서 비롯되는 무거운 주의의무와 공권력 행사 주체의 광범한 사실조사능력 등을 고려해 사인(私人)보다 훨씬 더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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