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분리수거 때마다 시민들은 혼란에 빠진다. 쓰레기의 성분을 공부해야 하는 난관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재활용품 분리수거 제도가 도입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재활용 비율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분리수거를 하긴 하지만 기준을 잘 모르고 있었고 이를 관리하는 경비원들도 비슷했다. 전문가들은 자원 순환을 위한 실질적 재활용이 이뤄지기 위해선 통일된 분리수거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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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가 지난 8일 오후 찾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2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 분리수거장. ‘비닐류’라고 적힌 봉투 안에는 플라스틱의 일종인 EPE(발포 폴리에틸렌) 재질의 과일 그물망이 버려져 있었다. 환경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과일망은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바로 옆에 있는 ‘플라스틱류’ 봉투에는 유선 청소기 본체와 전선이 함께 담겨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플라스틱 통만 버려진 듯한 이 봉투 안에는 자세히 살펴보니 고무와 철제 스프링, 플라스틱 등 여러 소재가 섞인 화장품 용기와 과자 통도 눈에 띄었다.
시민들의 분리수거는 일정한 기준 없이 제각각일뿐더러 바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같은 날 분리수거가 한창인 강남구 대치동의 800여 세대 아파트에서도 ‘제멋대로’ 분리수거 장면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주민들이 버리고 떠난 비닐류 수거 봉지에는 빨간색 고무장갑이 보였다. 강남구 조례에 따르면 고무장갑은 비닐류가 아닌 PP 마대에 버려야 하지만 잘못 분류돼 버려진 것이다. 겉면에 ‘종이류’라고 표시돼 있지만 캔류에 버려진 야구 응원봉도 보였다. 이 아파트 주민 50대 여성은 “하나하나 뭘 어디로 넣어야 하는지 살펴볼 여유가 없다”며 1분여 만에 1주일 치 쓰레기를 버리고는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이처럼 제대로 분류되지 않은 채 버려진 쓰레기는 대부분 매립 혹은 소각된다. ‘재활용’되지 못한다는 소리다. 이러한 이유 탓에 1995년 분리수거 제도가 도입된 후 30년이 지났지만 재활용률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가 발간한 전국 폐기물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23년 생활(가정) 폐기물의 재활용률은 59%다. 하지만 이 비율은 사실상 폐기물을 소각하는 에너지 회수 방식을 포함한 것으로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이를 재활용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원료 그대로를 가공해 제품을 새로 만드는 물질 재활용 비율은 폐기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6.2%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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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답답함을 토로한다. 분리수거장을 관리하는 아파트 경비원들도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렇게나 버리는 주민도 많지만, 그렇다고 경비원이 규정을 하나하나 알 수도 없다는 것이다. 대치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은 “아주 눈에 띄는 것만 정리하기도 바쁘다”며 “우리도 매번 모르고 정리하니 문제라면 문제”라고 했다. 서울 성북구의 한 오피스텔 관리 직원도 “입주민들이 제대로 버리지 않으면 쓰레기를 안 가져가 버린다”며 “일일이 확인할 수 없으니 안 가져갈까 봐 난감한 건 나”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어려움에도 이유는 있다. 익숙하지 않은 품목이거나 다양한 소재가 섞이면 버리기가 난감하다는 것이다. 부산에 사는 김정인(27)씨는 “아이돌 팬이라 앨범을 사고 버릴 때 CD가 플라스틱인 줄 알았는데 재활용이 어렵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며 “앨범 안에 내장된 포스터의 코팅 사진도 종이류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지자체마다 다른 분리배출 지침도 문제다. 종이팩의 경우 서울 송파구에서는 별도 수거함에 버리도록 하지만 수거함이 없는 대다수 지자체는 종이류나 일반 쓰레기에 버리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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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환경부는 제도 재정비 차원보다는 국민 누구나 쉽게 찾아보고 이해할 수 있게 관련 사이트(생활폐기물 분리배출 누리집)을 만들고 있다. 분리배출이 어려운 생활폐기물을 누리집에서 입력하면 분리배출 요령을 알려주는 게 골자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해 9월쯤 공식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목표를 두고 현재 사이트를 구축 중”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