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합의를 이뤘다. 이번 합의로 한미 간 자유무역협정(FTA)의 실질적 효력이 사실상 상실됐지만, 그나마 ‘선방했다’는 평가를 대통령실은 내놓았다.
한국과 미국은 이번 합의에서 상호 관세를 기존 예정됐던 25%에서 15%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이는 앞서 일본이 미국과 합의한 관세율과 동일하다. 농축산물 시장에 대한 추가 개방은 합의하지 않았다.
또 양국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 중 1500억달러는 미국 조선업에 대한 전용 투자 펀드로 설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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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각으로 31일 새벽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큰 고비 하나 넘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협상은 우리 국민주권 정부의 첫 통상 분야 과제였다”면서 “촉박한 기간과 녹록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정부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협상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통상 합의 펀드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이 대통령은 “양국 전략산업 협력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으로, 조선·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에너지 등 우리가 강점을 가진 산업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의 미국 시장 진출을 적극 돕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 중 1500억달러는 조선 협력 전용 펀드로, 우리 기업의 미국 조선업 진출을 든든하게 뒷받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는 제조업 재건이라는 미국의 이해와, 미국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확대라는 우리의 의지가 맞닿은 결과”라면서 “이를 통해 한미 간 산업 협력이 더욱 강화되고, 한미 동맹도 더욱 확고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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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관세가 15%로 결정된 것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12.5% 관세율을 목표로 최선을 다해 협상했으나, 미국 측에서는 ‘대통령(트럼프)의 결정은 모두 15%’라며 양보하지 않았다”며 “이를 고수할 경우 전체 협상 틀이 흔들릴 우려가 있어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부과가 예고된 반도체·의약품 관세의 경우에도, 다른 나라에 비해 불리하지 않도록 최혜국 대우가 적용될 예정”이라며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고, 감내 가능한 수준 내에서 상호 호혜적인 결과를 도출한다는 원칙 아래 임했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한국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자동차에 대해 무관세 혜택을 받아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도 이번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기존 자동차 관세 2.5%를 포함해 15% 관세율을 적용받기로 했다.
그러나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을 막은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김 실장은 “미국은 ‘30개월 미만 월령 제한을 두는 국가는 전 세계에 세 나라뿐’이라고 주장했고, 우리는 ‘한국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세계 1위 국가’라고 맞섰다”고 설명했다. 이어 “쌀 개방 문제도 거론됐고, 대통령은 농축산물이 가진 정치적 민감성과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고려해 추가 개방을 막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철강·알루미늄, 이후 별도 관세 부과 있을 듯”
윤석혁 대통령실 산업정책비서관은 추가 브리핑에서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32조 품목 관세는 이번 협상에서 논의된 바 없다”며 “해당 품목은 미국 측에서 여전히 별도 관세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철강·알루미늄이 포함된 가전제품 등 부가가치가 더해진 제품에도 기존 관세가 적용된다”며 “이번 협상은 이 품목들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조치는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미국이 향후 반도체 및 의약품에 대해 품목별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예고가 있다”며 “이에 대비해 우리는 미국이 어떤 품목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조건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최혜국 대우’ 조항을 협정문에 명시했다”고 밝혔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식 초청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도 미국을 곧 방문해 양국 간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대통령실은 2주 이내 이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가능하도록 준비하겠다는 방침이다.